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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3년 7월 Special Theme  6 · 25전쟁 정전70주년 특집 독립군 · 광복군에서 국군으로 활약한 인물들 (洛陽) 분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였다. 재학 중이던 1935년 1월 난징 성내 고안리(高安里)에서 거행된 특 무대 발대식에서 제2대장으로 임명되어 한인학생훈 련소를 설치하고 학생들에게 중국군관학교 입학에 필요한 예비교육을 실시하였다. 1936년 여름 군관학 교 제10기 보병과를 졸업하고, 중국군 제2사단에 배 속되어 대일전에 참전했다. 또 1936년 여름 군관학 교 제10기 보병과를 졸업하고, 중국군 제2사단에 배 속되어 대일전에 참전하였다. 이 무렵 신분을 숨기기 위해 왕형(王衡)이란 이름을 쓰기도 했다. 안춘생은 1937년 8월 13일 일본군의 상하이(上海) 침공시 일본 해군 육전대사령부 공격전 및 인상항·보 산지창·원동운동장(시중심구) 등 전투에 참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으나, 상해 철수작전시 왼쪽 다리에 관통 상을 입었다. 1938년 육군대위로 호남성경비사령부 에 복무 중 임시정부의 비밀지령에 의하여 일본군 점 령 하의 상하이에서 거사할 폭탄을 비밀리에 향항(香 港, 홍콩)까지 운반했다, 12월에는 임시정부와 상하 이지구간에 통신하는 데 사용할 무전암호를 갖고 일 본군이 점령 중이던 상하이의 공작반에 비밀리에 전 달하기도 했다. 그는 1939년 10월까지 중국군 육군 소령으로서 중국 군정부(軍政府) 감호대대(監護大隊) 에서 복무하였다. 한국광복군의 간부가 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임시정부는 광복 군 창설을 위해 선전 및 초모활동을 전개하고, 재정 을 마련하며, 중국 정부와의 교섭을 진행하였다. 치 장(綦江)에 머물고 있던 임시정부는 광복군 창설 준 비의 첫 단계로 화베이(華北) 진출 예비공작을 위해 1939년 8월 ‘군사특파단’을 조직하여 산시성( 陕 西省) 시안(西安)으로 파견하였다. 이 때 안춘생 등 중국군 출신들이 참여하면서 군사특파단의 선전·초모(招募) 활동은 확장되어 갔다. 마침내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우리의 창설식)을 중국 국민정 부의 임시 수도이자 임시정부의 청사가 위치한 충칭 (重慶)서 거행하였다. 한국광복군 총사령에는 지청천, 참모장에는 이범 석이 임명되었으며, 전투부대는 제1 · 2 · 3지대로 구성 안춘생이 입교하여 훈련받은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洛陽)  분교 터(2002년, 독립기념관 제공)  한국광복군 제2지대원들 기념 촬영(중국 시안)(독립기념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