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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3년 6월 Special Theme ‘의병의 날’ 13주년 기념 특집 한말 의병전쟁을 다시 본다 진룡과 조맹선 · 우병렬 · 백삼규, 그리고 강원도의 박 장호 등도 서간도 지역으로 망명한 대표적인 의병이 었다. 이들은 1919년 3 · 1운동 후 대한독립단을 조직 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안동의진에 참여했던 이상룡과 유인식은 1911년 서간도지역으로 망명해 신민회원들과 경학사(耕學 社)를 조직했다. 경학사는 부민단(扶民團) · 한족회 · 서 로군정서로 발전하며 독립운동기지 역 할을 담당했으며, 군사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했 다. 홍주의병장 이세영은 만주로 망명 한 후에도 계속해서 근왕적(勤王的) 성 격을 유지하며 1916년부터 1919년까 지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했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북간도지역은 연길지역으로 망명한 경성(鏡城)의병 출신들이 중심이었다. 경성의병은 이남기를 중심으로 관북 지역 유림들이 조직한 의병이었다. 경 성의병은 거병한 실패한 후 북간도 연 길로 망명했고, 연해주 지역에 망명해 있던 유인석 · 이범윤(李範允) 등이 조직 한 십삼도의군에 참여했다. 유인석은 1910년 6월 이범윤을 창의군(彰義軍) 총재, 이남기를 장의군(壯義軍) 총재로 십삼도의군을 조직해 의병봉기를 추진 했다. 그러나 십삼도의군이 실패로 돌아 가자 김정규(金鼎奎) · 지장회 · 최우익 등 경성의병 출신들은 1913년 공교회(孔敎會) 연길(延 吉)지회를 조직했다. 북간도지역 공교도들은 1919년 9월 북간도지역에서 광복단을 조직했고 대한광복단 에 통합되었다. 이범윤은 1919년 3 · 1운동 후 의병세 력을 규합해 연해주 추풍(秋豐)에서 대한광복단을 조 직했으며, 만주지역으로 조직을 확대하던 중 광복단 을 통합했던 것이다. 이범윤은 1920년 북간도지역 대한독립단 본부 터(유하현 삼원포, 독립기념관 제공) 광복회 창립지, 대구 달성공원 입구(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