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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3년 2월 Special Theme 「조선혁명선언」 100년! 새로운 사회 건설을 꿈꾸다 예로센코, 루쉰, 단재; 병아리, 오리, 닭, 개; 사랑과 투쟁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맹인 시인 예로센코(1890~ 1952)가 일본에서 추방되어 1922년 2월 24일, 빠다 오완 루쉰의 집에 와 가장 안쪽 동쪽 채에 머물렀다. 루쉰은 예로센코가 북경대학 교수가 되어 에스페란 토어를 가르치게 도왔고, 1923년에는 예로센코와 에스페란토학교(孟端學校)를 세우기도 했다. 1922- 23년 베이징에도 ‘예로센코 현상’이 일어났다. 당시 이회영과 신채호도 에스페란트어를 배웠다. 앞을 볼 수 없는 예로센코는 개구리 소리를 듣고 싶어서 루쉰 동생이 파 놓은 작은 연못에 올챙이를 사와 방목하였고, 이어서 오리 네 마리도 구입하여 같이 키웠다. 빠다오완 루쉰 옛집에는 현재 이 ‘오리 연못’(鴨池)이 조성되어 있다. 예로센코는 1922년 5 월, 새끼 오리를 사랑하던 병아리가 오리와 같이 놀 기 위해 연못에 들어가 죽어버렸다는 동화 「병아리 의 비극」을 집필하였다. 루쉰은 7월 이 작품을 번역 하였고, 이어서 10월에는 「병아리의 비극」에 대한 대칭적 꽁트 「오리의 희극」을 썼다. 예로센코가 사온 오리가 크면서 연못의 올챙이를 모두 잡아먹어, 개 구리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시끄러운 오 리 소리만 들린다는 이야기이다. 무정 부주의는 실로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 럼이 있는데, 「병아리의 비극」과 「오리 의 희극」도 예로센코와 루쉰 사이에 존 재하던 사상적 차이를 보여준다. 예로 센코는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에 반대하고 초민족 적 상호 부조와 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루쉰에 게 상호부조는 이상이며, 엄연한 약육강식의 현실에 맞설 것을 강조하였다. 예로센코와 루쉰이 올챙이 · 병아리 · 오리를 소재로 꽁트를 썼는데, 이즈음 단재는 석등암에서 한시 「회 포를 적음[述懷]」으로 닭과 개, 그리고 인간을 풍자하 였다. 개와 닭은 본시 사람에게 지은 죄가 없거늘/ 사람들 은 먹기 위해 매일 죽이지// 세상에는 오직 강한 권세 만 있을 뿐/ 부질없이 인의[仁義] 외쳐 무엇하리요// 청빈하게 도[道]를 말하는 잘난 선비여/ 검 휘둘러 베 는 사람[手劒斬人]이 진정한 남아라네// 성현이라 일 컫는 이 어떤 자들인가/ 모범 두 글자 내세우고 서로 속이네. 당시 석등암의 주지 스님(위예천越塵)은 절의 재 정 확보를 위해 부업으로 암자의 방을 세놓고, 닭과 개를 길러 팔았다. 단재는 개와 닭과 인간의 관계를 통 해서 세상은 상호부조의 조화롭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빠다오완 루쉰기념관 내 오리연못(鴨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