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page
45page
김율 金津(1881~1908. 4. 26.) 건국훈장 독립장(1995년)
뛰어난 통솔력과 지략(智略)을 갖춘 형제 의병장은 수십 차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때로는 군수를 비롯한 지방관이나 자위단(自衛團) 등 친일 새벽을 준열하게 꾸짖는 편지를 보내어 강력한 항일의지를 천명하였다.
일제는 대규모의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사시 때때로 진압작전을 전개하였다. 혈전을 계속하면 김태원 의병장은 1908년 4월 25일 일제의 기병대 및 제2특설순사대와 맞서 싸우다 광주 어등산 (魚登山)에서 장렬히 순국하였다. 김혜도(金海道)를 비롯한 수십 명의 의병도 함께 산화했으니. 아소식을 듣고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죽봉이 순축하기 한단 진에 체포되었던 동생 청봉도 형의 서신 확인을 빌미로 삼은 일제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광복 이후 정부는 형제 의병장에게 전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한편, 죽봉의 부인 낙안오씨는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른 후 여린 아들이 도리를 알도록 기웠다. 마침 대황제 붕어(배)의 비보가 전해지자, 국상(喪)을 달했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조개처럼 목숨을 던졌다. 국제 의병장의 진승(盡忠)과 더불어 낙안오씨의 악영(烈) 또한 후세에 전해야 옳으리라.
김재원·김을 좋게 의병장의 의로움은 호남의 산과 들을 의향(義)으로 다시 피워낸 한말( 木) 항일정신의 표상이다. 조국과 거래를 위해 순국한 경제 의병상의 구국제반(救國濟民)의 행열정신을 영원한 귀감으로 삼고자 탄생지인 이곳에 사작비를 세운다.
2025년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한국화호남진흥원장 정영기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