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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동북항일연군과 북한정권의 수립 45 사마르첸코 소좌, 부참모장은 최용건이 임명되었다. 여단 산하에는 4개의 영과 독립통신대대, 독립포병 대대, 자동소총대대가 구성되었다. 제1영 영장은 김 일성(대위)이, 정치위원은 안길(安吉, 대위)이 맡게 되었다. 제2영 영장은 왕효명(王效明, 한족), 정치위 원은 강신태가 맡았다. 3영 영장은 허형식, 정치위원 은 김책, 제4영 영장은 시세영(柴世榮, 한족), 정치위 원은 계청(季靑, 한족)이 맡았다. 88여단 성립으로 동북항일연군은 소련 극동전선 군의 지휘체계 아래 놓이게 되었다. 여단 참모장과 각 영의 부영장을 소련측 인사가 담당하였고, 주요 간부들은 소련군 계급을 부여받았다. 여장 주보중과 참모장 장수전(張壽籛 )은 소좌로, 각 영장은 대위로 임명받았다. 88여단은 소만 국경에서의 정찰이 주요 임무였는데, 따라서 적 후방에서 소규모 정찰과 교 란을 담당하기 위한 전투훈련이 주요 일과였다. 부 대원들은 영내 교육 훈련과 함께 소·만(滿), 조선·소 련 국경 지역에서 군사시설과 교통 및 운수 현황 정 찰, 대민 선전·선동 공작 수행 등 소부대 활동을 병행 하기도 하였다. 소련의 대일참전과 동북항일연군의 북한 입국 1945년 8월 8~9일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와 함께 작전을 개시하면서, 그동안 교육 훈련에 전념해왔던 88여단의 활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소련 측 초기 계획은 88여단 인사들의 대일 전투 작전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임박함에 따라 88여단 내부에서도 조직 전망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1945 년 7월 말 88여단 중공 동북당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는 기존 당조직을 분리하여 ‘신동북위원회’를 발족 시키는 동시에 ‘조선공작단’ 설치를 결정하였다. 공식적으로 조선공작단은 중국공산당의 조직이었 지만, 한국의 공산당 조직을 주도하면서 점차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분리해 나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단장은 김일성이, 당위원회 서기는 최용 건이 맡고 김책이 군사정치 분야와 당사업의 양 측 면 진행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1945년 8월 25일 현 재 88여단 소속 부대원은 135명인데, 이 중 조선인 1945년 10월 14일 모란봉 아래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환영대 회 주석단에 서 있는 김일성. 왼쪽은 통역으로 활동한 강(姜)미하일 소좌이고, 맨 오른쪽이 레베데프 소련군 정치사령관이다. 10월 14일 환영대회에서 원고를 보며 연설하는 김일성(이상 뉴 시 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