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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쿠바에서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고 특별후원금을 모금 45 ‘지구촌 끝’ 쿠바에 한인들이 살 게 된 것은 1905년 인천 제물포에 서 멕시코로 이주했던 1,033명 중 288명이 1921년 3월 25일 쿠바 마나티 항구에 도착한 이후이다. 이 들은 각 지역별로 대한인국민회 지 방회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독립운 동 자금을 지원하고, 동포들의 권익 을 보호하는 활동을 펼쳤다. 16년 간 멕시코에서 한인디아스포라 공 동체를 만들어 함께 생활했기 때문 에 가능했다. 미주지역 발행 『신한 민보』를 통해 1929년 광주학생독 립운동 소식을 접한 쿠바에서도 광 주학생들을 지지하는 대회를 개최 하고 이를 후원하는 모금운동을 했 다. 대한인국민회북미총회 쿠바지 방회 3개 지역(마탄자스·카르데나· 스마나티)에서 100여 명이 참여하 여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지지대회를 개최하고 후원금 100 여 달러를 모금했던 것이다. 대한인국민회 중심으로 똘똘 뭉친 쿠바 한인들 2024년 2월 14일 한국은 지구촌 끝 사회주의 국가 쿠바와 대사급 외 교관계 수립에 합의하였다. 2015년 뉴욕에서 연구년을 지낼 때 북미에 서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와 후원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쿠바와 인연 을 맺고 10년째 방문을 하며 쿠바와 수교를 주장했던 필자로서는 반가 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쿠바와 수교를 주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미수교국 쿠바 땅에 독립운 동가 한인후손 1천여명이 미국의 경제제재로 경제적 어려움 속에 힘겨 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관광객의 급감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쿠바 경제위기를 더욱 어렵게 하였 다. 이러한 쿠바의 경제위기는 한국과의 수교를 촉진한 가장 큰 요인 중 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지구촌 끝 쿠바 땅에 한인들이 살게 된 것은 1905년 인천 제물포에 서 멕시코로 이주했던 1,033명 중 288명이 1921년 3월 25일 쿠바 마 나티 항구에 도착하면서 부터이다. 쿠바로 재이주한 한인들이 각 지역 별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 하고,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멕시코의 에 네켄 농장에서 16년 간(1905~1921) 한인디아스포라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생활했기 때문이다. 쿠바로 재이주한 한인들은 마탄자스와 카르데나스 사탕수수 농장에 집중되어 거주하였다. 마탄자스 엘보로(Elbolo)에는 민성국어학교와 국민회 사무실도 들어섰다. 1937년 아바나에 대한인국민회지방회가 설립이 되고, 1943년에 재쿠바한족단이 조직되어 수도인 아바나로 한 인들의 이주가 증가했다. 쿠바에는 모두 4개 지역에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가 조직되어 미국 및 멕시코 한인사회와 함께 활동하면서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특별후원금을 냈고,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와도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활동하였다. 이는 백범 김구 선생의 『백 범일지』에도 2024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쿠바의 박창운, 임 천택 두분의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