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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영월엄씨대종회보 43호 확실하게 바로잡기 위한 첫 작업으로 문제의 을해보(乙亥譜.1875) 4, 5권의 필요 부분을 복사 해 두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각종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 각 종 참 고자료 보유자를 알음알음으로 찾아다니며 복사본을 챙기고 조사 연구를 진행한다.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귀중한 자료 하나를 접하게 된다. 내용인 즉, 경성으 로부 터 신축보(辛丑譜 1901)가 발간 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선대 어르신들이 수단을 만들 고 준 비에 만전을 기하였으나, 당시 국내외 정세가 급변 중이라 출간계획이 폐기됨에 따라 수 단(收 單) 내용을 ‘영월엄씨전라남도강진종중세계(寧越嚴氏全羅南道康津宗中世系)’로 필사 인쇄 본을 만들어 배포한 자료의 복사본을 수집한다. (수단. 관 24명, 동 31명, 수단금 94양 5전.) 이는 삼성당공계(三省堂公系) 자체로서 이루어 낸 계보(系譜)의 최초본으로 생각되며 , 우리 에게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계보(系譜)를 만드신 분들에 대한 정보 가 단 한 줄도 전해오는 기록이 없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 그때마다 기록의 중요성을 통감하 게 되 니, 이제부터라도 문중사에 대한 사항은 내용의 경중을 가리지 말고 수집하여 기록물로 남겨 야 한다는 데 초점이 모아진다. 그리고 회의나 모임의 기록도 좀더 세밀하게 기록해 두 어야 하겠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복사본 1부 柱三 보유) 나는, 엄문(嚴門)의 뿌리 찾기에 열성적이던 선친 덕분에 국민학교 때부터 무자보를 펼 쳐 놓 고 족보 보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시조(始祖) 내성군 임의(奈城君 林義)공을 시작으로 하 여 우 리 가계(家系)를 찾아보곤 했다. 종지(宗支)가 바로잡힌 24권의 壬寅譜(1962)를 모시게 된 종 친들은 그동안 애써 준비해온 추진위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면서, 그 과정 하나하나를 반추 하며 의기투합하여 즐거워 하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1962년 발행한 임인보(壬 寅譜) 에 삼성당공계의 참가 홋수가 104호, 관 동 합하여 256명, 보첩 14질을 모셨다. 선친은 기미대동보, 병자대동보 발간 준비기간이면 입보자 자녀들의 누보를 막기 위 해 삼 성당공 종친들이 옮겨간 거주지를 수소문하여 찾아 다니기 바빴다. 특히 병자보 발간 시 기에 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확산되어 거주지의 변동이 심해 전남ㆍ북 지역뿐만이 아니라 서울 지역, 경기도 포천지역, 강원도 삼척 지역 등 전국 각 지역을 대상으로 몇 개 팀을 꾸려 움직였 다. 서 역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