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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24년 12월 Special Theme 정의부 창립 100주년 기념 특집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국내 진공’ 활동했으며, 오동진과 같이 평북 출신들이 다수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김석하, 정이형, 홍학순, 김광 진 등은 오동진과 같은 평북 의주 출신이다. 이진무 는 평북 정주, 김태근은 평북 창성 출신이다. 정의부 군사활동의 일사례: 정이형 정이형의 국내진공작전을 살펴보면, 그는 1925년 3월 18일 정의부 의용군 제6중대장으로서 제8중대 장 김석하(金錫河), 제6중대 제3소대장 김정호(金正 浩) 등과 함께 관전현 하루하 약수동에 모여 초산경 찰서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1924년 중 일 본 경찰에게 다수의 독립군들이 사살되었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김석하는 초산경찰서 추목(楸木)경찰관 출장소를, 김정호는 같은 경찰서 외연(外淵)경찰관주 재소를, 정이형은 벽동경찰서 여해경찰관 출장소를 각각 습격하기로 했다. 3월 19일 정오 경 3개의 부대 로 나누어서 각각 목적지로 향했다. 정이형은 권총 2정을 휴대하고 부하 6명과 함께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이 날 오전 5~6시경 여해 경찰관주재소 에 도착했다. 여해 경찰관 출장소 근무 5명의 순사 중 일본인 서천 융길(西川隆吉), 임무, 신현택 등 3명을 현장에서 즉사시키고, 같 은 파출소 순사 시동환철량(矢動 丸鐵郞)에게는 왼쪽 넓적다리에 관통상을 입혔다. 그 리고 또 출장소와 부근 김정일(金正一) 집을 방화하 여 모두 불태우고, 서천 순사가 소지한 38식 기병총 한 정과 방한 외투 1벌을 노획하였다. 그는 또 1925년 7월경 정의부 제6중대 제1소대장 으로서 제6중대장 문학빈, 6중대 소대장 이성근(李 成根)·김창호(金昌湖) 등과 함께 군사활동을 전개하 였고, 국내진공작전 외에 군자금 모집활동도 전개하 였다. 즉 1926년 3월 하순 제1중대장으로서 소대장 김형명(金亨明)을 비롯, 부하 약 20명을 인솔하고 길 림(吉林)에 잠입하여 재류조선인으로부터 의무금을 징수하였다. 아울러 조선인의 행동을 감시하는 친일 밀정배를 발각 즉시 사형에 처하라고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또한 당시 길림 거주 김기풍·남재수·이덕화 등이 도박을 하자 이들에게 각각 벌금 100원씩을 징 수, 군자금으로 이용하였다. 정이형은 또한 1926년 4월 상순 군자금을 모금하 기 위해 장춘에 거주하는 조선인 유두승(柳斗乘)·황 도우(黃道宇) 외 수 명에게 청구서를 발송하고, 길장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에 있던 정의부 본부 터(추정, 독립기념관 제공) 일제강점기 최장기수로 20여년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한 정이형(1897~1956, 한 국학중앙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