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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평화의 소녀상 설명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님께서 처음으로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라고 용기를 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밝힌 일년 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의 수요집회가 시작되었다. 2011년 수요집회는 20년이 되었고 12월 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맞이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소녀상을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그리고 2024년 8월 15일 평화와 인권을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화순군민이 실시일반 마음을 모아 건립하게되었다. 새 :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새는 하늘을 날다가 땅에 앉기도 하여 산 사람과 돌아가신 사람을 영적으로 연결해주는 영매의 의미를 가지고도 있다. 즉 하늘은 돌아가신 사람들의 공간이며 땅은 현실에 있는 사람이고 이를 오가는 새가 영매의 역할인 것이다. 하여 비록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마음만은 현실에 있는 할머니들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한복 입은 소녀상 : 조선의 어린 소녀들에게 일본정부가 조직적인 폭력을 자행하였다는 것을 되새기고, 끌려 갔을 당시의 한복입은 소녀의 모습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할머니의 그림자 : 조각의 모습은 소녀의 형상이고 그림자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새겼다. 그림자 속의 하얀 나비 : 그 할머니의 그림자 모습 중에 가슴 부위에는 하얀 나비가 있다. 일본 정부의 사죄 한 마디를 기다리며 눈비 맞아가며 수요집회를 지켜오셨는데 그 원망과 서러움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고 계시다. 보통 나비는 환생을 상징하는데 부디 나비로 환생 하셔서 생전에 원하셨던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할머니 그림자 가운데 하얀 나비를 넣었다. 뜯겨진 머리카락 : 당시 조선 소녀의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분으로 소중하게 생각하여 함부로 짧게 자르지 않았다. 그런데 소녀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머리카락이 거칠게 뜯겨진 모습인데, 이는 낳아주신 부모와 내가 자란 고향을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억지로 단절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맨발 : 소녀의 발은 맨발이다. 소녀는 전쟁이 끝났지만 돌아오지 못 하거나 돌아와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내가 지은 죄가 아닌데 못할 짓을 한 것처럼 할머니들은 죄지은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 오셨다. 그리고 드디어 1991년 할머니들의 용기있는 고백이 있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우리 할머니들의 가슴의 한을 풀어주지 못했다. 이런 불편함을 뒤꿈치를 든 맨발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빈 의자 :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번째는 연로하신 탓에 일본 정부의 그릇됨을 고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세상을 먼저 떠나가신 할머님들의 빈자리를 쓸쓸하게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 소녀상 조각 옆에 빈 의자에 나란히 같이 앉아 그 당시 어릴 적의 소녀의 심정을 생각해 보고 현재의 할머님들의 외침을 함께 느껴 보는 자리이다. 세 번째는 할머님들께서 이 자리에 안계셔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여성과 아이의 인권을 위해 싸워오신 할머님의 염원을 이어 미래세대가 끝까지 함께하는 약속의 자리이다. 의자에 들국화 : 평화와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것을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화순군민의 의지와 순박한 마음을 상징하는 들국화를 의자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