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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23년 6월 Special Theme ‘의병의 날’ 13주년 기념 특집 한말 의병전쟁을 다시 본다 홍주의병에 참여했던 이근주(李根周), 예안의진에 참여했던 이만도 · 이중언, 이강년의진에 참여했던 김 택진, 경북 문경에서 거병했던 박세화는 강제병탄 소 식을 접하고 자결했다. 영양의병장 김도현은 1914년 부친상이 끝나자 동해로 걸어들어가 순국했으며, 이 강년의진의 김상태와 노병대, 호남의병장 박도경, 산 남의병장 최세윤 등은 옥중에서 자결순국했다. 호남 창의회맹소 통령 김용구(金容球)는 1919년 고종(광 무황제)의 서거소식을 듣고 자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말의병의 자결순국은 1910년대 지속적으로 전개 되었으며,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고 항일의식을 고취 했다. 국내에서 비밀단체를 조직하다 1910년 한일강제병탄이 되면서 국내는 일제의 직 접통치를 받게 되었고,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국내에서 는 비밀단체들이 조직되어 독립전쟁을 실현하기 위 해 자금모집과 의열투쟁, 해외 독립운동 지원활동등을 전개했 다. 한말의병에 참여했던 이들은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 풍기광 복단 · 민단조합 · 광복회 등의 비 밀단체를 조직했다. 독립의군부는 1912년 곽한 일 · 이식 · 임병찬 등이 재야유생 과 전직관료 출신들과 조직한 비 밀단체이다. 독립의군부는 ‘(인 재를 모아) 단체 조직→(일본정 부에) 서면상신 · (조선인에게 연 설 등으로) 독립사상고취→(시기를 보아)독립선언 →(여러나라와 협조해) 독립달성’이라는 방략을 추진 했으며, 의병봉기를 통해 독립을 달성하고자 했다. 독립의군부를 조직한 곽한일과 이식은 홍주의병 장, 임병찬은 태인의병장을 역임한 이들이다. 따라 서 독립의군부는 홍주의병과 태인의병 출신들이 중 심이었다. 독립의군부는 1914년 2월 총대표 및 도군 (道郡) 대표를 선정했는데, 총대표 임병찬 · 고석진 · 조 재학은 태인의병장, 곽한일 · 유준근은 홍주의병장이 었다. 군대표로 선정된 임병대 · 임응철 · 김기술 · 문달환 · 고 예진 · 고순진 · 고제만 · 김양수 등은 태인의병, 안병 찬 · 안항식 · 안병림 등은 홍주의병 출신이었다. 여영 조 · 이기상 · 이기영 · 정철화 등은 허위(許蔿)와 함께 13 도창의대진소 전국 연합 의병부대에 참여했으며 최 욱영 · 강순필 · 이식재는 이강년의진 출신이었다. 독립 의군부에 참여했던 김낙문 · 이동하 · 이식재 등은 1915 년 민단조합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자결순국한 영양의병장 김도현(초상화) 자결순국한 홍주의병장 이근주(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