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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24년 12월 Special Theme 정의부 창립 100주년 기념 특집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국내 진공’ 이 활발히 전개되자, 일본은 대륙 침략 정책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였으므로 한국독립군 단속과 체포에 관한 교섭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부에서는 국내진공작전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국내진공작전의 지도자 오동진 오동진(吳東振)은 정의부의 무장투쟁을 이끈 주도 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평북 초산군, 벽동군, 철산군의 국내진공작전을 주도 한 인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같 는다. 오동진은 1889년 8월 14일 평안북도 의주군 광평면 청수 동(靑水洞)에서 태어났다. 호는 송암(松菴)과 순천(順天)이다. 태어난 지 겨우 여덟 달만에 생 모 한씨(韓氏)가 사망해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하지만 할머니 도 세 살 되던 해에 돌아가시고 큰어머니 밑에서 자라야만 했 다. 7~8세부터 사촌과 함께 사숙을 다녔다. 파란 많은 유아기와 소년기 를 보내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유 랑생활을 하던 부친이 계모인 백씨 (白氏)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생활하 게 되었다. 계모 백씨는 현숙(賢淑)한 여인으로 어린 전처의 자식을 성심 껏 양육하였다. 훗날 정의부 의용군 사령관으로 활동하다 1927년 체포 되어 감옥에 있을 때도 노모 백씨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걱정했고, 자신 또한 사촌들 에게 70이 넘은 늙은 어머니의 봉양을 충심으로 부 탁할 정도로 모자간의 정이 깊었다. 유아기에 생모를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 만, 천성이 강직하고 정의로운 성품을 지녔다. 게다 가 온화한 품성까지 갖추어 항시 많은 친구들이 따 랐다. 이러한 성격은 성장하면서 타인을 감화시키고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되어, 후에 만주에 오동진 부인 회견기 『동아일보』 기사(1928.2.11)와 오동진 추도회 소식을 게재한 신문 기사(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정의부의 국내진공작전을 주도한 오동진 (1889~1944,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시절의 미쓰야 미야마쓰(위키백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