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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삼장 민간인 희생사건
사건개요 : 1948년 10월 19일 여수사건을 일으킨 14연대 반군이 토벌군에게 쫒겨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침투함으로써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진주한 토벌군(3연대 2대대) 사이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 되던 중 1949년 7월 18일 아침 반군 출현 정보를 입수한 토벌군인 3연대 소속 1개 소대 병력(3트럭)이 작전 수행을 위하여 출동하던 도중 시천면 신천리 일명(설통바위) 모퉁이에서 거의 전멸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사태의 원인이 주민 중에 통비분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토벌군은 인근 주민들을 신천국민학교에 모이게 한 후 노약자와 부녀자는 학교 뒤편에 있는 죽림(대나무밭)을 제거하게 한 후 청.장년 27명을 학살하고 학교 앞 강변에서 2명, 신천마을에서 7명을 학살하고 가옥을 불 질렀으며 7월 22일에는 덕산국민학교에다 주민들을 잡아다 놓고 눈을 가리게 한 후 반군에게 식사를 제공했거나 등짐을 저다 주었거나 빼앗긴 사람은 눈을 뜨고 나오라고 하여 이를 전선줄로 엮어 학교 뒷산으로 끌고가 78명을 학살한 것을 비롯하여 거리에서, 들녘에서 닥치는 대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시면면 외공리 이상 상부지역 5개리 13개 마을 가옥 500여동을 불지른 사건이고 그 후 삼장면 평촌부락 일명 가막골에서 트럭 2대에 싣고 와서 학살하였으며 평촌부락민들을 모두 나오라고 한 뒤 마을 전부를 불을 지르고 나서 청년들을 가막골에서 학살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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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삼장 민간인 희생사건 연혁
1989.09.06. 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 결성
1990.05.26 위령비 건립추진위원호의 활동에 힘을 얻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족들을 규합하여 유족회를 결성
1994.04.26. 위령비 제막(시천면 외공리 개미정)
1999.08.10. 산청군의회에 신실규명 청원서를 제출함으로써 산청군의회에서는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1999년 10월 8일부터 2000년 4얼 7일까지 6개월간의 조사활동을 통하여 동년 6월 산청군 시천.삼장 양민학살 사건 진상조사 실태보고서를 발간
2000.10. 산청군의회에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특별범 제정 청원
2005.05.03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국회통관
2005.11.01.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
2006.06.09.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사건에 대한 조사개시 결정
2007.11.20.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
2007.12.15. 현 위치로 위령비 이전
2009.06.24 국방부에서 제16회 합동위령제 제부비용으로 400만원 지원이 있었으나 1회에 그침
2020.12.10.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