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page

42 2024년 6월 Special Theme   제14회 ‘의병의 날’ 기념 특집 ‘대한제국기 후기 의병의 봉기와 일제의 의병 탄압’  일 충청도 청풍의 작성전투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었 다. 1908년 10월 13일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을 받 고 순국하였다. ➋ 신돌석, 일본군의 토벌작전에 반토벌작전으로 맞서다 신돌석의 영릉의진은 창의 이후 꾸준히 군사와 무 기를 확보해 나가면서 경북과 강원도의 접경지 울 진과 삼척지역에서 활동했다. 먼저 울진지역에 전초 기지를 마련하는 한편, 서울진공을 위한 북상계획도 추진했다. 특히 북상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신돌석 은 1906년부터 울진 관아를 비롯하여 울진 우편소 를 습격하였고, 무려 3차례에 걸친 삼척 장호동 공략 을 통해 일본인을 습격하여 처단하고 군수품을 확보 하였다. 이것은 동해안 일대에 진출하여 어업 침탈 에 앞장서던 일본인 어부나 수산업자를 공격하기 위 한 것이었다. 한편, 신돌석의 영릉의진은 1907년 9월 이후 일본 군의 적극적이 토벌작전에 직면했다. 이에 신돌석은 태백산 등지에서 산악지대를 이용하는 유격전을 통 한 반토벌작전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끈 질긴 토벌작전은 신돌석의 활동을 위축시켰고, 일본 군의 ‘생포 작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신돌석은 최후 의 수단으로 만주 망명을 계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1908년 12월 12일 인척이자 부하였던 자들에 의해 타살순국하고 말았다. ➌ 정환직, 아들에 이어 순절하다 1907년 음력 8월 29일 입암전투에서 창의장 정 문경의 이강년기념관 앞에 세워진 이강년 이병장 동 상(문경시청 제공) 영덕군이 생가 부근에 세운 기념관 내 사당 충의사에  있는 신돌석 초상화(영덕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