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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씨대종회보 43호 19 현(昡)공은 항상 선봉에 서서 전투마다 전과가 혁혁했다. 도주하는 왜적을 쫓아 해남(海 南) 에 이르러 대진하게 되었는데, 엄동설한에 보급이 여의치 못하니 굶주린 의병은 마필을 끌고 부득히 퇴진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11월 초닷새 날 야간공격을 펼쳐 용전분투하다가 순 절하 니 향년 52세였다. 임진왜란 승전에 더 크게 기여하지 못함이 다만 안타까운 뿐이다. 수 행하 던 자손과 의병들이 울며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인 이천으로 운구하던 중 영암(靈巖) 월 출산 (月出山) 아래 누릿재(累里峙)에 당도하니 일기불순하고 모두가 기진하여 더 나아가기 어 려워 서 그자리에 매장하였다.(현재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산 1번지) 후손들은 삼성당공(三省堂公)의 충정과 행동으로 남긴 유훈을 더욱 받들어 제 몫을 다 할 각 오를 다져보며 살아온다. 우국충정에서 거의소청(擧義掃淸)하고자 분연히 떨치고 일어 섰던 의병장의 12대 후손으로 엄현성(嚴賢聖 柱仁 27세)이 대한민국 32대 해군참모총장(대 장 大 將)으로 봉직(奉職)하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의 절절한 염원을 하느님이 이루어 준 일이 다. 이 는 삼성당공계의 영예를 넘어 엄문의 광영이다.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크게 쓰일 인 물을 우리에게 점지해 준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다. 삼성당공 현(昡 16세)공은 장자 백(伯 17세)과 차자 우(佑17세) 두 아들과 장손자 귀 선(貴 善 18세), 차손자 종식(宗植 18세)을 둔다. 귀선(貴善 호 春江 18세)은 철복(哲福 19세) , 태복 (泰福 19세) 두 아들을, 차손자 종식(宗植 18세)은 중신(仲信 19세) 한 아들을 둔다. 철복 (哲福 19세)은 아들 중대(重大 20세)와 손자 경행(慶行21세)을, 태복(泰福 19세)은 아들 몽기 (夢奇 20세)와 손자 경업(慶業21세)을 두며, 중신(仲信 19세)은 아들 재일(在逸 20세), 손자 경 필(慶 弼 21세)을 둔다. 21세까지의 자손들이 생면 부지의 산촌이나 오지(奧地)에서 전답을 일구어 생업을 꾸려 가면 서도 조상의 위업을 잊지 않고 이어가기 위해 자손의 훈육에 열과 성을 다한 결과 22세부터 는 작 지만 착실하게 기반을 잡아간다. 철복(哲福 19세)의 아들 중대(重大 20세 호 산수정 山水亭 )는 문 장과 효행이 널리 알려져 처사(處士)로 불렸고, 태복(泰福 19세)의 손자 경업(慶業 21세)은 문 장과 필법이 유명하여 청암처사(淸岩處士)라 불렸다. 경업(경업)의 아들 원준(元俊 22세)이 무과통 훈대 부(武科通訓大夫)로서 제주판관(濟州判官)을 역임하니, 그 아버지 경업(慶業)은 통정대부승문 원좌 영월엄씨 복야공파 삼성당공계, 끊기지 않는 여정(꿈을 실현해 가는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