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page

Special Theme • 백두산 주변의 주요 독립운동과 유적지 41 사를 지내고 ‘충열자 제공지묘(忠烈者諸公之墓)’라는 비석을 세웠다. 용정의 3 · 13 항일의거는 1919년 국 내에서 일어난 3 · 1운동을 성원하고, 한민족의 독립 을 선포하였다. 3 · 13의거는 사전에 철저히 준비되어 일어난 북간도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다. 이것이 기폭 제가 되어 5월 중순까지 연길, 안도, 화룡, 왕청, 유 하, 통화, 장백, 환인, 관전 등 길림성과 요녕성(遼寧 省) 한인 사회 전역으로 3 · 13운동이 이어졌다. 독립운동사 3대 대첩과 그 현장 ① 봉오동전투 1919년 3 · 1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의 무 장 항쟁이 활발해지자 일본은 1920년 5월부터 독립 군을 탄압코자 ‘토벌작전’을 추진하였다. 홍범도의 대 한독립군은 북간도 지역 독립군부대의 통일과 연합 에 나서 1920년 5월 28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 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등과 연합하여 대 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봉오동에 집결 하여 좀 더 강력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 1920년 6월 7일 홍범도가 지휘한 독립군 연합 부 대는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각 부대를 나누어 봉 오동 분지 주변의 산에 매복하였다. 홍범도는 2개 중 대를 이끌고 서쪽 산의 북단에 자리 잡았다. 최진동 과 안무는 동북쪽의 산에서 병력을 지휘하였다. 일본 군은 3시간가량 응사하다가 막대한 희생자를 내고 6 1919년 3월 13일 용정의 만세시위에 참가한 군중의 모습(김재홍  제공)   ‘3·13열사능’에서 거행되고 있는 ‘용정 3·13운동 기념식’(2007. 3) 3·13 군중대회를 알리는 종을 친 망루. 현재 용정소방 서 망루로 쓰이고 있다(20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