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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1920년대 초 독립운동 상황과 「조선혁명선언」 41 도 독립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자, 외교론에 대신 해서 독립전쟁론이 부상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단재 는 지금까지 10여 년간 서북간도와 연해주, 국내 경 향 각지에서 각 지사들이 ‘준비’를 외쳤으나, ‘그 소득 은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 없는 단체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준비론자들의 성과가 미미한 것 은 그들의 성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의 착 오’라고 진단하였다. 제4장에서는 민중의 직접 혁명을 통해서 일제를 구축하는 방법을 설파하였다. 먼저 구시대의 혁명 은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인 ‘특수세력끼리의 명칭 변 경’, 즉 지배 계층의 변경에 불과하므로 인민은 직접 적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금일의 혁명 은 ‘민중혁명’이고 ‘직접혁명’이라고 정의하며 혁명의 제일보로서 민중의 각오를 촉구했다. 민중 각오의 첫 번째 길은 먼저 깨달은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 하여 혁명적 선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중 을 깨우쳐 강도정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 을 개척하자면 ‘양병(養兵) 십만(十萬)이 일척(一擲)의 작탄(炸彈)만 못하며, 억 천장 신문 잡지가 일회 폭동 (暴動)만 못하다.’라고 단언하였다. 이어 폭력(암살 · 파괴 · 폭동)의 목적물을 ① 조선 총 독 및 각 관공리, ② 일본 천황 및 각 관공리, ③ 정탐 노, 매국적, ④ 적의 일체 시설물. 이외 독립운동을 지 연시키고 중상하는 자, 일본인 이주민 등으로 제시 하였다. 마지막 제5장에서는 이상적 조선 건설론과 파괴 의 5가지 대상을 제시하였다. 단재는 혁명의 길은 파 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파괴를 위한 파 괴가 아니라 건설을 위한 파괴라고 정의하였다. 파 괴의 대상을 이족통치, 특권계급, 경제약탈제도, 사 회적 불평균, 노예적 문화사상 등 다섯 가지로 제시 했다. 다섯 가지를 파괴한 이후 다섯 가지의 건설 목 표도 제시하였다. 곧, ① 고유적 조선, ② 자유적 조 선 민중, ③ 민중적 경제, ④ 민중적 사회, ⑤ 민중적 문화가 그것이다. 이는 조선이 독립되고 조선 민중 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민중이 주체가 되는 경제 · 사 회 · 문화적 상태를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단재가 「조선혁명선언」의 결론으로 강조한 것은 이 상적 조선 – 신조선의 건설이었다. 그 주체는 민중이 었고, 그 수단은 폭력 – 암살 · 파괴 · 폭동이었다. 그 과 정은 ①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 ② 불합리한 일체 제도 개조, ③ 이상적 조선의 건설이었다. 단재는 「조 선혁명선언」의 대미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 암살 · 파괴 · 폭동 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필자 박걸순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과 한국근현대사학회 회장,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 소장, 박물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 서로 『한국독립운동과 역사인식』, 『식민지시기의 역사학과 역사인식』, 『충북의 독립운공과 독립운동가』 외 한국근현대사 논저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