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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영월엄씨대종회보 43호 영월엄씨 복야공파 삼성당공계, 끊기지 않는 여정 (꿈을 실현해 가는 발걸음) 1. 영월엄씨 복야공파 삼성당공계 내력 영월엄씨 삼성당공계(三省堂公系) 계조(系祖) 현(昡)공은 시조공 내성군 임의(林義)공의 16세 손이다. 5세 복야공 광(光)공이 11대 조이고, 11세 총제공(摠制公 조선개국공신) 유온(有溫)공이 5대조 이고, 총제공의 장손 사직공(司直公) 산수(山壽 13세)공이 증조부 이며, 조부는 통훈대부선공감 훈(訓)이며, 부(父)는 생원(生員) 용공 (用恭15세)이다. 사직공 산수의 둘째 따님이 성종의 귀인(貴人)이 되었는데 연산군 갑자사화(1504년) 때 간신 임사홍이 연산의 생모 윤씨가 폐비된 것이 엄귀 인(嚴貴人)의 모함 때문이었다는 누명을 씌워 참혹하게 목숨을 앗아갔고, 사직공 산수와 윤필 상 등 12 대신이 참형을 당하는 끔찍한 비극을 당했다. 조부 훈공은 이천(利川)으로 피신하여 생을 마감했고, 부 용공은 기묘사화(1519년)의 화를 입어 이를 피해 홀로 이천을 떠나 낙남(落南)한 기묘유현(己卯儒賢 기묘사화 피해를 크게 당 한 선비)이다. 갑자사화와 기묘사회, 두 번에 걸친 사화의 참화로 가세는 어려워졌으나 선비 의 기개를 잃지 않은 가풍 속에서 어머니의 훈도를 받고 자란 현(昡)공은 어려서부터 영민하 고 강건하여 글 읽기를 좋아하고 무예 익히기에도 열심이었다.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고 계속하여 학문과 무예에 열중하여 사직(社稷) 에 크게 봉사할 준비를 하고 있던 중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관군의 병력만으로는 대적하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지에서 의병이 분기함에 현(昡)공도 거의소청(擧義掃淸)하고 자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 장자 백(伯), 맏손자(胄孫) 귀선(貴善), 차손자(次孫) 종식(宗植)을 데 리고 전투가 치열한 호남으로 내려가며 충의심에서 격문을 띄우니 의병 수천명이 따랐다. 엄 주 삼 (진웅 27세) 역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