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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025년 5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해외 독립운동 세력의 귀환과 해방 정국’ 었기 때문에 조국을 향한 발걸음 또한 빠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압록강을 건넌 것은 1945년 11월 중·하순이었던 것 같다. 입북한 독립동맹 간부들은 한달 가까이 정세를 관 망하였다. 그들은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이 발표된 직후부터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기 시 작하였다. 1946년 1월 2일 독립동맹 주석 김 두봉은 평양 방송을 통해 모스크바 삼 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며 독립동맹은 자주 독립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겠다 고 선언하였다. 언론에서는 조선의용 군이 만주에서 동포를 보호할 뿐 아니 라 청년들을 군사 정치적으로 훈련, 단련시키고 있다고 전하였다. 이후 독립동맹 간부들은 김일성 등 동북항일연군 출신들이 주도해 나갔 던 제반 정책을 지지하고 거기에 편 입해 들어갔다. 1945년 12월에 개최 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위원장은 김일성)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 회의 에서는 무정이 간부 부장으로 임명되 었다. 이어서 1946년 2월 북한 최초 의 중앙 권력기구인 북조선 임시인민 위원회(위원장 김일성)가 결성되면서 김두봉은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8년 9월 9일 북한에서 조선민주주 의 인민공화국이 건립되면서, 독립동 맹 간부인 허정숙(문화선전상) · 박일우 (내무상) · 최창익(재정상) · 무정(민족보 위상), 그리고 38선 이남에서 올라온 백남운(교육상) 등은 각료로 입각하였다. ‘동족상잔’의 한 당사자가 되다 심양에서 1개월 동안 같이 지냈던 조선의용군 대 1946년 초 남만주 통화현 일대에서 한국인들을 괴롭히던 마적 · 토비 등을 토벌 하고 기념촬영한 조선의용군 제1지대 대원들 연변에 진출한 조선의용군 제5지대 (1945년 12월, 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