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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화영 사택 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대 한 사람으로 활동한 오화영이 종교교회(宗橋敎會) 목사로 재직하며 살았던 곳이다. 오화영(吳華英, 1880 ~ 1960)은 3.1운동 준비 과정에서 개성과 원산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여 만세운동의 지방 확산에 기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일제에 붙잡혀 마포 경성감옥에 옥고를 치렀다.
1927년 신간회가 창립될 때 간사로 선출되어 민족협동전선을 이끌었으며,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과 1939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두 차례나 더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