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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024년 6월 Special Theme 제14회 ‘의병의 날’ 기념 특집 ‘대한제국기 후기 의병의 봉기와 일제의 의병 탄압’ ➋ 서울진공을 목표로 하다 을사늑약 이후 각처에서 일어난 의병부대의 최종 목표는 서울진공이었다.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 진(山南義陣)에서 정환직과 정용기 부자는 서울진공 작전 참여에 목표를 두고 활동하였다. 서울진공작전의 구상은 왕산 허위(許蔿)를 비롯하 여 이강년 · 여중룡 등 전기의병에 참여하였던 의병장 이 논의하여 추진했다. 을미의병 해산 이후 상경 활 동하고 있던 의병장들의 계획은 일제 침략의 상징인 한국통감부를 격파하고, 서울을 점거하고 있던 일본 인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이들은 1906년 음력 5 월 5일 단오일을 맞이하여 서울 혜화동에서 만나 창 의와 서울진공에 대해 논의하고 맹서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김천 출신의 의병장 여중룡의 문집 『남은선 생유집』의 「을사일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5월 5일 각처 동지들에게 밀통하여 혜화동(惠化 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모임에 나온 허위 (許蔿) · 이강년(李康秊) · 우용택(禹龍澤) · 이병구(李 炳九), 그리고 나는 의병을 일으키기로 상의하였 다. 용택은 노모가 있어 응하지 않았고, 병구 또 한 신병으로 사양하였다. 3인이 논의하여 정하 기를 허위는 안동(安東)을 중심으로 강원도 일대 를 순행하여 경성으로 모이고, 이강년은 상주(尙 州)를 중심으로 하여 충청도를 순행하여 경성으 로 모이고, 나는 김산(金山)을 중심으로 전라도 일대를 순행하여 의병장 최익현(崔益鉉)과 합세 하여 서울에서 만나 함께 이른바 통감부(統監府) 를 파괴하기로 계획하였다. 삽혈(歃血)하여 맹서 (盟誓)하고 손가락으로 서인(署印)한 뒤 울며 파 하였다. 여중룡의 문집 『남은선생유집』 표지(‘옛날물건’ 제공) 필자의 저서 『목숨바쳐 나라를 사랑한 선비 왕산 허위』 표지(지식 산업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