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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영월엄씨대종회보 41호 하였다. 1978년에는 호당 1평 이상 매수 캠 페인을 전개하여 묘역 규모를 1,700평으로 넓히고 1979년 발족한 중앙종친회를 중심 으로 전국적인 시향 대제를 받들게 되었다. 1979년 기미 대동보 발간을 계기로 시조 공 묘소 성역화 사업 추진을 본격화하였는데 당시 병길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엄문에 출 세한 분도 별로 많지 않은 것이 엄씨가 다혈 질이고 직선적인 것에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조상의 은덕을 입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엄문의 구심점이 될 만한 상징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중에 마침 (주)건영의 엄희섭 명예회장이 당시 거금을 지원하여 시 조공 묘소 성역화를 구상하게 되었다 한다. 1989년 중앙종친회장으로 다시 추대되신 병길 회장은 그해 12월 22일 착공식을 거 행하고 묘역 진입로 공사를 필두로 하여 ① 현 묘역 확장과 실전 10세조 단소 건립 ② 현존 석물의 개량 ③ 묘역의 전면 새 조경 ④ 현 관리사의 전면 개축 등 성역화 사업을 본격 시행하여 1990년 10월 9일 시향대제 를 성황리에 봉행할 수 있었다. 시향대제일 전일 오후 5시경 영월에 갑자 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동쪽 산 너머로 쌍무지개가 떠오르는 신비로운 현 상이 발생하였다. 다음날의 시향대제을 준 비하던 병길 회장님을 비롯한 몇몇 후손들 일행은 마치 조상님들이 수백 년 세월 동안 구천에 혼령으로 떠도시다 이제야 영주할 곳을 굽어살피시며 기뻐하시며 비 눈물을 뿌리시는 듯하다면서 쌍무지개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엄문의 뜻을 모아 시조공 묘역과 실전 10세조까지의 제단이 마련되고 그 시 제와 초혼제를 올리려 할 즈음에 홀연히 늦 가을 비를 뿌리며 묘역 상공에 오색영롱한 쌍무지개를 세우니 이 또한 어찌 범상한 일 이겠는가! 다. 충의공 기념관 건립 충의공 기념관 건립사업은 전 건영그룹 상호 회장이 엄문의 선산에 망제를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지창룡 박사의 조언에 엄병 길 회장 등 여러종현들과 함께 1980년 구 상하였다. 노산묘가 왕릉으로 추봉되면서 능 둘레 5리가 나라 땅으로 귀속되어 우리 엄문의 시조공으로부터 10세조까지의 선산 을 실전당하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이에 상호 회장은 1980년부터 수년간 자비와 종 현들의 협력을 받아 내어 각고의 노력으로 선산회복과 충효사상의 대표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충의공엄흥도충신기념 관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문 화 교 육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