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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023년 3월 Special Theme 국민대표회의 100주년! 민족운동 세력의 통합과 혁신을 도모하다 시켰다. 개정된 헌법은 대통령제를 폐지한 임기 3년 의 국무령제인데 그동안 정국 혼란이 임기 규정이 없 는 대통령제의 헌법과 이승만의 독단에 있었다는 반 성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승만은 4월 29일 ‘대통령선 포문’을 발포하여, 자신에 대한 탄핵을 ‘상하이의 일 부 인사들이 정부 파괴를 시도한 위법한 망령된 행 동’이라고 비난하고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하겠다며 임시정부와 갈등을 이어갔다. 이로써 개조파가 국민대표회의에서 주장한 개조 론은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된 뒤 벌인 정국쇄신운동 으로 완료됐다. 하지만 국민대표회의의 결렬은 독립 운동의 최고기관으로서의 임시정부 위상에 회복할 수 없는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 임시정부는 이제 이전 국내와 만주, 노령, 미주 등지로부터 받았 던 지지를 잃고 상하이라는 지역의 일개 독립운동 단 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회의 과정에서 개조 파와 정부옹호파, 그리고 창조파 사이에 상호 큰 불신을 낳게 함으로써 이후 독립운동계 내에 갈등과 분열의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 필자 윤대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사 ·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규장각한국학 원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 ·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사)역사학연구소 연구원으 로 활동하고 있다. 『상해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구』 · 『21세기 한 · 중 · 일 역사전 쟁』 · 『데라우치 마사다케 통감의 강제병합 공작과 ‘한일병합’의 불법성』 · 『제국의 암살자들』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➌ 1920년 12월 28일 상하이에서 열린 이승만(화환두른 이)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 환영회 모습. 그 옆에 국무총리 이동휘(왼쪽)와 내무부장 안창호(오 른쪽)가 서 있다(독립기념관 제공) ➍ 임시대통령 탄핵에 반발한 이승만의 선포문(1924.4.29) ➍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