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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5월31일 토요일 4 (제221호) 특 집 △박영록(서울시 동작구)△순천박씨중앙종 친회(서울시송파구)△박병인(인천시연수구)△ 박희중(세종시) △박두현(경기 고양시)△박창규 븡박병직븡박성호(경기 성남시) △박경석(경기 용 인시)△박철식(경기하남시)△박연희븡박해용븡 박동석(강원 동해시) △박동창(강원 태백시) △ 박용선븡박재영(강원 원주시) △박덕식(강원 횡 성군) △박주선(강원 홍천군) △박용만(충남 공 주시) △박왕야븡박원재(충남 천안시) △박봉순 (충남 서천군) △박부규(충북 충주시) △박기종 (충북 옥천군)△박동기븡박세태븡박민서(대구달 서구) △박성용(대구동구)△박범식븡박진하븡박 원곤븡박은현(대구 수성구) △박창순(부산 금정 구)△박성복(부산북구) △박형만(부산사상구) △박종대븡박준형(부산 부산진구) △박남수븡박 영덕(부산 수영구) △박영우(부산 영도구) △박 만순(부산 연제구) △박병기(울산 북구) △박외 근(경북 경주시) △박수환(경북 안동시) △박창 균(경북 영천시) △박종백븡박수복(경북 포항시) △박상홍(경북 고령군) △박복로븡박상훈븡박의 묵븡박순식(경북 청도군) △박명오븡박정영븡박순 돌븡박부돌븡박영배(경남 밀양시) △박채은(경남 양산시) △박관룡(경남 진주시) △박능출븡박문 호븡박재헌븡박영희븡박장제븡박성국븡박의부븡박 태주(경남 창원시) △박문갑븡박기수(경남 통영 시) △박권제(경남 거창군) △박용일(경남 고성 군) △박갑영븡박개동(경남 산청군) △박명호븡박 래근(경남 의령군) △박재규(경남 창녕군) △박 순곤(경남 함안군) △박철규(경남 함양군) △박 우성(광주 남구) △박홍문(광주 광산구) △박철 주(전북 남원시) △박진규븡박순정(전북 전주시) △박종인(전남광양시)△박지현(전남나주시)△ 박동식(전남목포시)△박종민(전남강진군)△박 현준(전남 곡성군) △박희석(전남 영암군) △박 래호(전남 장성군) △박철환(전남 장흥군) △박 주청(전남 진도군) △박흥학븡박창수븡박성호븡박 승석(제주시) ◎서울시 △박재우(성동구) ◎광주광역시 △박호진(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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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6월 21일자 신 한은 행으 로 입금 해 주신 박 기태 님.△2월24일 국민은행 박중수(화곡동)님.△2월 15일자폰카카오로 입금해주신박현규님.△2021년7월2일자E-우리은행한빛신문구독 료로 입금해주신 고객님. △4월 13일자 PC신한은행 3100로 입금해 주신고객님께서는신문사로연락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TEL:(05 5)352-7224 뱜▶후원하여주신분 뱚뱚제보및구독신청안내:055-352-7224,FAX:055-352-7225▶e-mail:parkss1012@hanmail.net 묘골은조선단종때사육신 의 한 사람인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의 후손들이 대를이어살아온영남의대표 적인양반마을이다. 충절로이름높은묘골의순 천박씨 마을은 70여 호나 된 큰집성촌을이루었다.그러나 지금은 후손들이 직장을 따라 도시로많이이주하여다른성 을가진이웃들과한데어울려 옛골기와집에서30여호가정 답게모여살고있다. 같은 성을 가진 집안사람들 이 한마을에서 충절을 삶의 신 조로 삼아 성실히 살고 있는 이마을의집들은모두오래되 어 옛 빛이 저절로 드러나 보 인다. 사육신의 한분이신 박팽년 선생은 본관은 순천이고 자는 인수 호는취금헌이다.1417년태어나조선세조원년(1456)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한 집안이 모두 없어 지는화를입게되었다.(서기1456년,40세) 평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 기는가훈을몸에익히고열심히공부하여18세에문과에급제,집 현전에서 일하게 된그는성삼문등 여러학자들과 학문을 연구하 여세종임금의사랑을많이받았다.충청도관찰사에이어형조참 판(법무부차관)으로있던중단종복위운동을일으켰다가실패하 여끝내죽음을당했다. 이일로 화를당한 분은형조 참판이었던 취금헌자신과이조판 서로 있었던 아버지(박중림), 4형제(인년,기년, 대년, 연년)와 그 의아들(헌,순,분)3代에걸쳐9명이다. 이들은 모두 목숨을 잃고, 부녀자들은 모두 관청의 노비(종)로 끌려갔다. 사육신 중 다른 다섯 분(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들도같은방법으로집안의3대(부모,자신,아들)의가족들 이모두죽음을당하였다. 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인지 취금헌의 후손은 하빈면 묘리에 새 터를잡아살고있으니그사연은다음과같다. 취금헌의둘째아들인박순의아내(성주이씨)는친정이대구의 하빈이었다.그래서친정이가까운대구로와서관비로있던중유 복자를낳게되자“아들을낳으면죽이고딸을낳으면관비로몰수 하라.”는어명이내렸다. 아기는아들이었다.이때우연히도같은날부인의종이딸을낳 았다.그래서이들은두아기를모두살리기위하여서로바꾸어기 르게되었다. 이렇게하여간신히목숨을건진취금헌의손자박비(박씨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는 지난 일들을 모른 채 무럭무럭 자랐다.그 후 노비가 청년이 되었을 때 박비의 이모부인 이극균이 경상도 관찰 사(종2품,현도지사)로와있었다. 그는이씨부인이있던 묘골에찾아와박비를 붙들고눈물을흘 리면서,“언제까지나 이렇게 숨어서만 살 수 있느냐?자수하여 떳 떳하게 살도록 하여라.”하며 서울로 갈 것을 권유하였다. 이때는 임금이 바뀌어 성종이 왕으로 계셨는데 조정에서도 사육신들에 대해서 옳은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성종임금은 찾아온 박비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충신의 자손이라 칭찬하면서 그동안의고생을위로해주었다.이러한일은하늘이보살핀큰은 혜였다.성종은사육신중오직하나남은핏줄이라하면서박비의 이름을박일산(朴壹珊)이라고치고사복시정(司僕侍正:궁중의가 마와마필,목장을맡은책임자)의벼슬도내렸다. 박일산은성종10년(서기1479)묘골에터전을잡아99칸의종가 건물을짓고살았다. 묘골의육신사(六臣祠)는조선세조때단종의복위를꾀하다가 목숨을 잃은 박팽년,성삼문,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의 위패 를모신사당이다. 처음에는 충정공 취금헌 선생만이 후손에 의해서 배향되어 오 다가 선생의 현손인 계창공이 선생의 제삿날에 여섯 어른이 함께 사당문밖에 서서성거리는꿈을꾸었다.잠에서깨어난그는깜짝 놀라서다시다섯분의제물도함께차려제사를지냈다.그후부터 낙빈사를세워사육신을함께모셔제사를지냈는데조선고종3년 (1866)흥선대원군의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서원과 함께훼철되었 다.그 후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다시사육신을이곳에봉 안하게 되었다.1974년과 1975년 사이에 충효 위인 유적 정화사업 에 따라 정면 5칸, 다포식 겹처마 팔짝지붕의 육신사를 건립하게 되었다.그리고 1981년에는 외삼문(外三門),삼충각,숭절당,관리 사,담장등을갖추었다. 하빈면 묘리 743번지에 있 는 삼충각(三 忠閣)의 유래 는 다음과 같 다. 조선 세조 때 박 충정공 및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사 전에 발각되어 1456년(丙子) 6월 6일 박 충정공의 부친인 문민공 (휘仲林)을비롯한3대의아홉분이동시에심한형벌을받고친족 및 인척 등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그 후 조선시대여러임금이충정공의충절을기리기위해영조51년(서 기1775년) 사손(嗣孫) 일산공에게 ‘충신지려(忠臣之閭)’라 정려 하였다.순조 31년(서기1831년)에는 일산공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수하여 충의를 높였으므로 일산공과 그의 아버지(진사공 박순)를동시에정려하여삼충각(3대표충각)이라하였다. 1832년(순조32년)에 삼남 관찰사 김양순(金陽淳)과 후임 관찰 사 서희순(徐熹淳)이 경상 71읍 수령에게 알려 필요한 경비를 마 련하여다음해에기실비를세웠다(1835년) 충정공의후손이며홍문관교리(종5품)로있던승현(升鉉)공이 지은비각은정면과측면이모두1칸인맞배집(비각)안에오석으 로 보존되어 있다. 앞면에는 순천박씨 삼세정충기실비(順天朴氏 三世旌忠記室碑)라쓰여있으며높이1.7m,폭60㎝,두께30㎝이다. 조선성종10년(1479년),묘리638번지용산밑에터를잡아박일 산이세운태고정(太古亭)은1971년12월6일보물제554호로지정 된문화재다. 일시루(一是樓)라고도부르는태고정은655평의터에자리잡아 건물2동(30평)이보존되어있다.이정자가원래서있던건물의위 치를 보면 정자의 북편에 사육신의 절의묘가 있고 남서쪽에는 흥 (興)자 모양의 99칸 종택이 있었다. 2층 기각루, 2층 피서루, 부용 란, 복도,점화루,장서각,대청, 창옥, 응방루,등의 건물이 있었고 남쪽으로는 홍전문과 이문이 있어 절도사 이하의 관직에 있는 사 람들은말에서내렸다고한다. 선조 25년(서기1592)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사우(사당)와 태고정 일부를 남기고 다 타버렸다. 1596년(선조29)에 총관공 충 후공이 다시 세웠으며,광해군 6년(1614)에 중건했다.충후(忠後) 공은선무원종공신1등에녹훈되었다. 임진왜란 중에 왜병이 육신사의 사당 서북쪽의 기둥을 도끼로 찍으니 기둥은 상하지 않고 자기 발만 찍혔다고 한다. 또, 사우와 태고정에 불을지를 때갑자기하늘에서 천둥과번개가치고 많은 비가쏟아져저절로불이꺼졌다. 왜병들이 그 신기함에 몹시 두려워할 때 총관공의 아우 충서공 (판관공)이 왜병을 격퇴시켰다. 그러나 박충후의 두 딸은 왜병에 쫓겨구봉산탁대위에서몸을던져순절했다. 그후에체찰사가육신사의도끼자국과불난흔적을보고시를 읊어정각에걸었다. 【난후에인가는/백에하나도남아있기가어려운데/오직육 선생 사당만은/산기슭에 우뚝 서 있네/ 선생들의충절은 신명이 감동하여/하늘도도와주시니/오랑캐의불길이어찌혼령을놀라 게하리.】 선조31(1598)12월27일명나라 사신서관란,진효,정응태,양조 령.및 우리나라 접반사인 신점,이호민,육국성,백유함과 여러 높 은 벼슬아치들이 이곳을 찾아 육선생 사당을 참배하고 태고정에 현판을걸었으므로박충후가그답으로3일동안크게잔치를베풀 었다. 서관란은 병사수백명에게명령하여묘동 마을뒤의 낙동강늪 지대에 깃대를 세우고 십리잔평(낙동강 건너편 파회마을과 마주 보는 넓을 들)을 개간하였으므로 지금도 이 평야를 현전(둑밭)이 라고부른다. 밀성(밀양)박씨전국청년회·여성회유 적탐방 경주10왕릉및묘골육신사등 사육신의후손 박팽년선생영정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영정제81호 지 정(충남대윤여환교수作) 육신사에모신충혼 육신사전경 삼충각에모신충절 선조유적탐방을통해선조의유훈을더듬고보학증진 을 통해 숭조를 실천하는 2025년 밀성(밀양)박씨전국 청년회·여성회 선조유적탐방행사가 지난 10일 경주 일원과대구달성군하빈면묘골의육신사를찾았다. 이날 행사에는 청년회 박현수 지도위원과 박병욱 부 회장이 남해왕릉,신덕왕릉 참봉에 각각 도임하게 되 어 일정을 맞추어 청년회와 여성회 회원 40여명이 참 석도임을축하하는시간을함께가졌다. 박종우청년회장은선조유적탐방은자기계발을위하 는 것이라 하였으며, 박소영여성회장은 나의뿌리를 명확히하고더나아가종친간사랑을갖는계기가될 것이라며회원들을독려했다. 이번탐방은 경주나정을 첫번째로찾아시조대왕이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일성왕릉을 찾아 서는 구보에 나오는 일성왕릉은 축대가 무너지고 흩 어진 모습이었으나 축대가 단정하게 축조되는 등깨 끗하게 보존되고 있는 모습에 감탄하며 선대 어른들 의숭조심에감응(感應)하였다. 대구 육신사를 찾아서는 사육신의충절을 기리고,계 유정란의주요인물들이충정공박팽년선생의아버지 문민공한석당박중림선생의제자들로그의학맥에서 비롯되었음을알수있었다. 밀성박씨전국청년회는 2001년 창립되어 2003년부터 전국의선조유적지를탐방하며보학증진과선조님의 행장 등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여성회는 2008 년창립과함께청년회와함께했다. 한편육신사가있는묘골은순천박씨충정공후손들의 집성촌으로많은학생들이충의체험을위해찾고있어 소개해본다. 보물태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