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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전쟁 원년’ 선포의 배경과 의미 39 “외교의 주지(主旨)를 독립전쟁의 후원을 얻는 데 두어 그 방침으로서 대외선전의 주지를 셋으로 나눠 한 국의 독립이 동양 및 세계의 평화에 필요함과 일본의 통치 아래서는 한 족(韓族)은 도저히 생존번영을 향락 치 못할 것과 한족에게 독립국민이 될 자격이 있음을 선전하여 세계로 하여금 한국의 독립전쟁을 원조케 하도록 한다.” 이는 미국 등 열강을 상대로 한 독 립청원운동에서 독립전쟁을 후원하는 군사외교로의 전환을 천명한 것이다. 임시정부는 먼저 중국의 협력을 얻 고자 했다. 중국 외교단을 편성, 중국 의 남·북정부 및 군벌과 교섭하여 군 사 준비에 편의를 얻을 뿐만 아니라, 중국 사관학교에 한인 청년을 입교시 켜 한중 연합행동을 촉구하기로 결정 한 것이다. 또 미일전쟁 및 러일전쟁 의 당사국인 미국과 러시아(소련)를 상대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소련 측으로부터 독립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대 소외교에 노력했는데, 이는 레닌이 이끄는 소비에트 정부와 인연이 있던 이동휘의 영향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임시정부는 독립전쟁 수행을 위해 내부적인 준비 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를 위해 이동휘는 14개항의 준비 방안을 제시했다. 그중 핵심적인 사항들을 열 거하면 군사 경험이 풍부한 인재의 소집, 병사 의 모 집 및 훈련, 기존 무장단체들의 군무부 복속, 사관학 교 설립, 외국과의 군수물자 수입 교섭, 감사대(敢死 隊) 및 작탄대(炸彈隊) 편성, 비행기대 설립 등이 있 었다. 실제로 임시정부는 이를 하나하나 실천해 나 갔다. 먼저 국민개병제 실시를 위해 군적(軍籍) 등록 및 국민군 편성에 착수하여 18세 이상 남녀는 모두 군 대한민국 원년(1919년) 12월 홍범도가 ‘노령 주둔 대한독립군 대장' 명의로 발표 한 유고문. 임시정부를 존중한다는 것과 독립전쟁의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독립기념관 제공). 1922년 초 모스크바에서 함께 기념촬영한 홍범도(좌)와 최진동(반병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