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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참의부 독립군의 근거지 구축과 국내진공작전 39 한인 단체들과 싸워야 했고, 때로는 만주 각처에 흩 어져 있던 마적단과도 싸워야 했기 때문에 더욱 어 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독립군기지 개척 초기 한국 독립운동가들에게 호 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중국당국은 1920년 ‘경신참 변’ 이후 독립군 및 이주한인들을 점차 배척하더니 1925년 6월 ‘미쓰야협정’ 체결 이후부터는 일제와 결탁하여 더욱 노골적인 감시와 탄압을 자행하였다. 따라서 참의부 독립군들은 각 지역에 분산된 무장투 쟁의 근거지를 구축하는 한편, 중일의 탄압과 감시 를 경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시기 참의부 독립군의 무장활동 가운데 대표적 인 것은 ‘사이토(齋藤實) 총독 저격투쟁’과 ‘이수흥의 국내진공 투쟁’ 독립군 ‘낭림대(狼林隊)’와 ‘관서대 (寬西隊)’의 국내진공 작전 등을 들 수 있다. 사이토 총독 저격은 비록 총독을 죽이지는 못했고 작전의 규모도 크지는 않았으나, 우리 민족과 독립운동계에 적지 않은 용기를 불러 일으켰고 반대로 일본측에는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독립군 이수흥의 국 내진공 투쟁은 ‘고마령참변’을 설욕하기 위해 단신 으로 봉천성(奉天省, 현재 요녕성) 뇌자구(雷子溝)를 출발하여 국내로 들어온 후 황해도를 거쳐 식민통치 의 심장부인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뒤흔들어 놓았 다. 일제 군경 3천여 명이 동원된 삼엄한 계엄 상태 에서 5개월여 동안 4대 사건을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흔적도 없이 수행하다 끝내 체포되어 순국한 치열한 투쟁이었다. 참의부는 1923년 대한통의부에서 분립하여 1929 년 해체될 때까지 7년여 동안 만주와 국내에서 일제 의 관공서를 파괴하고, 일제 군경 및 밀정과 친 일파 를 숙청하면서 재만 한인들과 내국인들에게 반일사 상을 선전하며, 그들의 반일투쟁을 고무시켰다. 참 의부 독립군의 대일 무장투쟁은 한민족 독립투쟁사 에서 가장 처절하고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 다. 경기도 이천시 이수흥공원에 있는 이수흥 선생 동상(독립기념관 제공) 단국대학교 사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임 연구원, 광복회 학술연구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대한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 을 맡고 있다. 상하이 『독립신문』 사장과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을 지낸 독립운 동가 김승학의 손자로 조부와 부친에 이어 3대째 역사의 가학을 잇고 있다. 저서 『국외 3 · 1운동』(공저), 『김동삼』, 『대한민국임시정부사』, 『조선사편수회 출신 의 해방후 동향과 영향』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필자 김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