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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1940년대 대구 태극단의 학생독립운동 39 자 하였다. 특히 시국에 관한 대화를 통해 민족의식 이 높고 실천력이 강한 단원들을 은밀히 규합했는 데, 학교 유도부에서 서상교와 같이 훈련하던 김정 진부터 하급생 및 타교 학생 2명(경북중학교 최두환, 대구공업학교 윤삼룡)까지 확대되어 갔다. 당시 민족의식을 고양하려는 단체들이 일제의 감 시를 피해 독서회 · 연구회를 표방하고 우회적으로 활 동한 것과 달리, 태극단은 1943년 5월 9일 대구 앞 산 비파산에서 공식적인 결단식을 갖고 일제에 대한 항쟁의지를 직접 밝히는 조직명칭과 강령(綱領)을 작성하고 군사부 · 무도부 등 투쟁적 조직체계도 구 체화하였다. 태극단 강령 은 “조선민족의 이상적인 단결과 능률로써 당면 최 대목표인 조선독립을 도모 하여 투쟁할 것이며, 그 종 국의 목적은 전세계 인류 의 영원한 평화, 자유, 평등 을 찾는데 있다”라고 하여 자주독립 투쟁의지와 함께 민족자결 및 세계평화라는 사상적 배경도 보여주고 있다. 조직은 일반조직과 특수 조직으로 구분하여 정단 원과 준단원으로 구성하고 장기적인 조직확대를 위 해 건아(健兒)대원까지 구 상하였다. 일반조직은 관방국, 체육국, 과학국 3개 국이 있는데 관방국에는 비서관 · 부관 · 회계관 3개라 인을 두었고, 체육국에는 무도부 · 군사부 · 경기부 · 등 산부 · 씨름부 5개부서가 있고, 과학국은 박물부(博物 部) · 이화부(理化部) · 항공부(航空部) 3개부서로 구성되 었다. 단장은 이상호, 관방국장 김상길, 체육국장 서 상교, 과학국장 이준윤 등이었다. 최고의결기관인 간 부회의는 부장급 이상의 간부로서 구성하고 간부회 의에는 의장 1명, 부의장 1명, 서기관 2명을 두었다. 1940년대 초 대구상업학교 전경(영남일보 제공)  구 대구상업학교 본관[대구시 중구 대봉로 260(대봉동) 소재,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