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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한국광복군과 미국 OSS의 합작훈련 39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1940년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제 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 로 참전하고자 하였다. 임시정부 와 광복군은 일제를 상대로 전쟁 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전승국 자격 으로 한국독립을 쟁취한다는 전략 을 세우고 있었다. 1945년 광복군 은 미국 OSS와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이라는 한미 공동작전을 기 획하고 추진하였다. 독수리작전에  따라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했으나,  그 직전에 일제가 항복함으로써 이  작전은 실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 러나 임시정부는 특수훈련을 받은  한국광복군 대원들을 중심으로 한 반도 진입작전을 추진함으로써 국 외 독립운동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 었다. 한국광복군·미국 OSS 합작훈련의 배경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고자 하였다. 임시정부 및 광복 군은 일제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전승국의 자격으로 한 국독립을 쟁취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미국 전략첩보기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도 중국에서 발진하는 대일 첩보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 다. 1944년 중반 이후 광복군과 OSS의 합작 교섭이 재개되었다. 그해 10월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은 중국전구(戰區) OSS의 싸전트(Clyde B. Sargent) 대위에게 대일첩보작전에 대한 합작을 제의하였다. 이범석은 싸전트에게 일본군에서 탈출한 수백명에 달하는 한인 청년 들을 훈련시켜 연합군의 대일전쟁에 투입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OSS도 일본군 탈출 학병 출신 광복군 대원들의 존재를 크게 주목하던 터였다. OSS는 광복군과의 합작이 한반도 및 일본 열도를 향한 대일첩 보작전을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였다. 그렇게 하여 1945년 광복군은 미국 OSS와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이라는 한미 공동작전을 기획하고 추진하였다. 임시정부는 특 수훈련을 받은 한국광복군 대원들을 중심으로 한반도 진입작전을 추진 함으로써 국외 독립운동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수 있었다. 합작훈련의 전개 한국광복군과 OSS의 합작훈련은 광복군 제2지대가 주둔하고 있던 시안(西安) 두곡(杜曲)에서 진행되었다. 광복군과 OSS는 광복군 제2지 대 본부에 한미 합동지휘본부(Korean-American Joint Command)를 설치하였다. 이범석과 싸전트는 양측의 지휘관으로서 긴밀한 공조체제 를 구축하였다. 1945년 5월 11일부터 공동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광복군 제2지대 대 원들에 대한 특수훈련이 시작되었다. 당시 광복군 제2지대 대원 가운데 특수훈련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은 125명 정도였다. 이들 가운데 50명을 단위로 제1기·제2기의 훈련이 계획되어, 제1기 훈련에 50명이 선발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