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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백두산 주변의 주요 독립운동과 유적지 39 다. 이들 비문과 함께 길림성문물보호단위라는 표 지석이 있는데, 뒤에는 반일의사로서 계몽활동과 교육운동,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내용을 기록하 고 있다. 선구자의 고향과 용정 3 · 13운동 용정시(龍井市)는 한인들이 회령에서 두만강을 넘어서서 바로 한인촌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간 도 시이다. 이곳은 한국 독립운동 및 일제의 침략과 관련된 사적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일송정 푸 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만 년 흐른다”로 시작되는 ‘선구자’는 ‘용정의 노래’라 고 한다. 일송정은 용정시가지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화룡 방향 3㎞ 지점 비암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정자형의 소 나무였다. 용주사에서 바라보면 커다란 바위에 마치 범이 버티고 앉아있는 형상이기 때문에 한인들은 이 곳을 신성한 장소로 여겼으며, 부근의 바위들을 남 아 출생의 기원석으로 삼았고, 가뭄이 들면 이곳에 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서, 청년들의 수련장소로서 애용되었던 곳이다. 그 러나 일제는 한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고 보고 이 소나무를 1938년에 고사시켰다. 1990년 용정시 인민정부와 각계 인사들은 비암 산에서 자생한 소나무를 이곳으로 옮겨 심고 정자 를 만들어 일송정이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한국인들 은 백두산을 가는 길에 연길을 거쳐 용정에 들르고 이곳 일송정에 오른다. 해란강과 세전벌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고 발해의 수도였던 중경현덕부가 있었던 서고성(西古城)터의 발해 유적과 표지석을 보면서 여 대종교 3종사의 묘소( 2011.6, 청호촌) 대종교 지도자 나철 · 서일 · 김교헌(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