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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전남 광주 어등산 전투 어등산은 광주를 비롯한 장성 · 나주 · 함 평 등지를 잇는 지리적인 요충지이자, 군의 경계에 위치하여 일본군경의 추적을 따돌리 기에 좋은 곳이다. 또한 1908년 4월 25일에 는 의병장 김태원(김준)을 비롯한 의병 23명 (혹은 13명)이 3시간여의 격전을 치르다가 어등산에서 순국하였다. 또 1909년 1월 10 일에는 김태원 의병부대의 선봉장을 지내다 독립한 조경환 의병장 이하 의병 20명이 전 사하고, 10명은 어등산 자락 운수동에서 피 체당하였다. 그해 9월 26일에는 양동환의병장과 의병 80명이 전투를 벌이다가 10명의 전사자를 냈다 . 전해산 의병부대의 중군장을 맡았던 김원범도 어등산에서 순국하였다. 이와 같이 이곳은 여러 의병 들 의 원한이 서린 곳이다. 어등산 의병 전투지 및 어등산 전적비(광주시 광산구 호남대 잔디구장) ▶ 호남창의회맹소, 호남의병의 깃발을 들다. 호남창의회맹소는 1907년 10월 30일 전라 남도 장성의 수연산 석수암에서 기삼연과 장 성의 유림이 연합하여 결성을 주도했다. 1907년 10월 말부터 1908년 1월 말까지 회 맹소는 미곡 유출 방지, 외래품 판매 금지, 납 세 거부, 친일단체 자위단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 또한 1907년 10월 30일 무장분파 소 습격, 고창읍성을 점령하여 장기적인 항전을 모색하기도 하였으며, 1907년 12월 7일 영광의 법성포를 공격하여 쌓아 둔 세곡을 빼앗아 일부는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일부는 군량미로 비축하였다. 1907년 9월 10일 장성읍과 영광읍을 점거하여 분파소 · 우편취급소 · 군아 · 세무서 등을 파괴하고, 일 본 인과 일진회원을 살해하였다. 기삼연 부대는 1908년 1월에도 계속 담양, 장성, 함평 등 여러 읍과 광주 의 일본인 농장을 습격했다. 그리하여 일부 일본 군경이 주둔한 시읍을 제외하고는 전남 · 북 경계 지역 일 대 는 완전히 의병의 세력권에 속했다. 뿐만 아니라 각지의 순사 분파소, 세무서, 관청, 일진회원, 일본인 상 점, 그리고 우편 취급소 등을 공격하였다. 전라도의 중서부 지방인 장성 · 영광 · 담양 · 고창 · 함평 등지 에 서 활동하였다. 당시 회맹소의 병력은 약 500명 규모를 유지하였다. ▶ 금성산성의 패전 새해명절인 설을 보내기 위해 담양 추월산의 금성산성(金城山城)에서 지내 려던 회맹소의 계획이 밀정에 의해 누설되어일본군의 공격을 받아서 수십 명 의 사상자를 내었고, 의병장 기삼연도 부상을 입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호남창의회맹소 유적지(담양 금성산성) 전남 담양 추월산 금성산성 호남의병 전투와 남한대토벌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