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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5년 2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2 · 8독립선언을 다시 본다’ 1941년 12월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1938년부터 국가총동원체제를 운영하자 재일조선 인들은 강제동원된 동포들을 저항과 투쟁의 길로 이 끌기도 했다. 이러한 재일조선인운동의 성과는 15 년간 침략전쟁을 이어가던 일본 당국에 걸림돌이었 다. 이 때문에 일본 당국은 협화회(協和會)를 통해 통 제하고 민족운동의 온상이었던 ‘조선부락’을 해체하 려 했으며, 검거라는 강경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들은 굴하는 대신 당국에 맞서는 길을 걸 었다. 철저히 감시하라! 1910년 8월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병합 직후부터 재일조선인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일본에 도 착하자마자 누구라도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 었다. 권력이 있거나 없거나 마찬가지였다. 천재 작 가 김사량(金史良)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진주 만을 공격한 날, 하숙집에서 ‘펜을 사각거리며’ 글을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일본에서 1928년 순국한 서진문의 묘(울산 동구 화정공 원소재, 울산시 제공)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마쓰시로초에 있는 ‘마쓰시 로[松代]대본영 조선인 희생자 추도평화기념비(祈念 碑)’[주(駐)니가타 총영사관 제공]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 순국한 송몽규 (1917~1945,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