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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5년 1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독립운동의 목표와 방법론 재조명’ 일우의 기회로 판단했다. 그때껏 독립전쟁 등 무력 투쟁에 대해 “자살적 행동”이라 비판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던 『독립신문』의 논조 역시 1920년에 들 어서면서부터 점차 독립전쟁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준비론(실력양성론)자였 던 안창호(安昌浩) 역시 1920년 1월 개최된 임시정 부의 신년축하회 자리에서 ‘우리 국민이 단정코 실 행할 6대사(六大事)’를 제시하면서, 그 첫 번째로 군 사를 꼽았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전쟁밖에 없다”고 역설한 것이다. 안창호는 “임시정부의 기치 아래 국민개병주의(國民皆兵主義)에 입각한 훈련을 실시하며 외교도 독립전쟁 준비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세부적 방략에 있어 이동휘와 안창호의 견해 는 달랐다. 이동휘는 러시아의 원조를 받아 즉각적 으로 전쟁에 돌입할 것을 주장했다(급진론). 그러나 안창호는 개전 시기나 과정에 있어 이동휘보다는 조 금 신중한 입장이었다. 안창호는 국민개병주의 와 국 민개납주의(國民皆納主義)에 입각하여 훈련된 군사 와 전비(戰費) 등을 갖추는 등 철저한 준비를 거친 뒤 에야 비로소 전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완 진론). 그러나 안창호는 신년축하회 연설에서 “독립 전쟁을 주장할진대 반드시 일제히 이동휘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덧붙임으로써, 세부적인 방략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독립전쟁 노선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안창호의 신년 연설 직후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 원년’으 로 선포했다. 독립전쟁 수행을 위한 임시정부의 노력 임시정부의 독립전쟁 원년 선포 후인 1920년 3월 2일 국무총리 이동휘는 시정방침(施政方針) 연설에 서 다음과 같은 외교노선을 천명했다. 안창호의 독립전쟁론이 담긴 1920년 1월 8일자 『독립신문』 기사 대표적 독립전쟁론자였던 국무총리 이동휘(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