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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4년 12월 Special Theme  정의부 창립 100주년 기념 특집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국내 진공’ 있는 방편이기도 했기에 그들과 일종의 상호부조 관 계를 형성했던 것이다. 실제로 미쓰야협정 이후 중국 정부가 한인들이 소지한 일체의 총기류를 조사하고 몰수하게 되자 참의부는 호구조사를 하지 않는 중국 인 지방유지 집에 무기를 보관시키거나 몸을 피신하 는 것으로 지방 경찰들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다. 참의부 독립군의 국내진공작전 참의부 독립군의 항일전은 결성 초기부터 끊임없 이 계속되었다. 이들은 만주 내에서도 적지 않은 활 동을 전개하였지만, 그보다는 국내에 진입하여 일제 군경과의 항전을 벌이는데 주력하였다. 참의부 독립 군의 독립전쟁은 유격전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참 의부 독립군은 국제적 혹은 국가적인 지원이 없었기 에 방대한 정규군으로의 편성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강대’한 일본군과의 전면전을 펼칠 수가 없었다. 한 민족의 독립전쟁사에서 일관된 이른바 ‘유격전’은 일제의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를 교란하고 지속적으 로 민중의 항일정신을 고무하며 세계 우방에 우리의 독립의지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한 말 의병투쟁으로부터 시작된 유격전은 3 · 1운동을 계 기로 재만 독립군 독립전쟁의 기본 전략이 되었다. 만주지역 유력한 독립단체 삼부(三府)의 하나였던 참의부는 정의부나 신민부(新民府)에 비해 한 · 중 국 경과 가까이 위치한 관계로 국내 진공작전에서도 가 장 주목할 만한 활동을 전개한 반면 일본군경의 공 격도 다른 독립군 부대에 비하여 더 심하게 받아 수 많은 인명과 물자의 희생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 시 기의 대일항쟁은 주로 국내 진공작전이었으며 그 가 운데서도 주로 평안도 지방의 관공서를 비롯한 경 찰서·우체국·영림서 등 일제기관에 대한 습격전이 었다. 이 시기 국경방면에서 실행된 항일전투의 3분 의 2 이상이 참의부 독립군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기 록은 이들의 투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말해주고 있 다. 참의부 독립군은 일본 군경만을 상대하여 싸우 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 군경은 물론 만주 군경 · 친일 1924년 5월 16일 함경남도 삼수군 신갈파진을 출발하는 조선총 독 사이토 일행의 순시선(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참의부 의용군의 사이토 조선총독 저격사건 을 대서특필한 『독립신문』 기사(1924.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