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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3년 9월 Special Theme  관동대지진 100주년 특집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유언비어를 그대로 실 었던 것은 아마도 정보의 부족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진상 파악 직후 ‘항의문’ 발송 임시정부가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파악하게 된 것 은 9월 7일이었다. 임시정부는 그 즉시 긴급각료회 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9월 10일에는 외무총장 조소앙(趙素昻)의 명의로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이었 던 야마모토 곤베에(山本権 兵衛)에게 항의서한(이하 「임시정부 항의서」)을 보냈다. 「임시정부 항의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임시정부 가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일부를 살펴보자. “사람들은 살기(殺氣)가 일어 천재지변과 화를 한국인에게 전가하여, 방화자도 한국인이요, 폭 탄을 투척한 자도 한국인이라고 하며, 군사를 일 으키며 전쟁을 선포하고 큰 적을 만난 것 같이 민군(民軍)을 부추겨서 무기를 들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노인, 어린아이, 학자, 노동자 할 것 없 이 한국인을 대량 학살하였으며, 물불 가리지 않 고 한국인을 찔러 죽였습니다.” 이 인용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학살 의 원인으로 유언비어를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시 정부는 유언비어가 무고한 조선인을 ‘적’으로 만들었 으며, 이에 현혹된 일본 민중들(노인, 어린아이, 학자, 노동자)에 의해 조선인이 학살되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유언비어를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 던 것 같다. 실제 유언비어의 생성·유포 과정 뿐만 아 니라 조선인 학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본 군대와 경찰 또한 깊게 관여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임시정부가 주목한 것은 ‘계엄령’이다. “군 사를 일으키며”, “전쟁을 선포하고”, “무기를 들게” 했다는 서술이 근거이다. 계엄령을 염두에 둔 것으 로 보인다. 이것은 일본정부의 계엄령 선포가 민중 들로 하여금 조선인 학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음 을 암시한 것이다. 임시정부는 일본정부의 이와 같 은 대처가 사실상 조선인을 ‘적’으로 규정하며 전쟁 을 선포한 것으로 보았고, 자신들도 전쟁에 나설 것 이라고 경고했다. 이어진 「임시정부 항의서」에서는 조선인 폭동 사 실을 유언비어로 보고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 다. 그것은 전술한 독립신문 9월 4일 자 「호외」와 달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의문」 1923년 9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