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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의 역사
우리 역사에서 관악구 일대의 지명은 삼국사기에 처음 언급된다. 한성일대는 원래 백제가 차지하였지만, 지역 명칭이 남아 있지 않다.
고구려가 통치하던 시기 잉벌노현으로 처음 등장하며, 신라시대에는 곡양현으로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금주로 불린다.
금주 땅은 고려전기의 명장이며 명재상인 강감찬의 출생지이다. 고려사에는 그에 대한 전기와 설화가 실려 있다. 관악 지역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시작된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전기 행정구역 변동과 함께 일시적으로 금과현, 금양현으로 불린 적이 있으나 주로 금천현으로 불렸다.
조선후기에는 정조 10년 시흥현으로 변경된다. 당시 시흥현 지도에는 봉천리, 신림리, 난곡리, 서원리의 명칭이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와 서울시로 편입 이전까지의 관악구는 시흥군에 속한다. 신림리, 봉천리 지역은 시역 시흥군 동면, 사당리(남현동 포함) 일대는 신동면이다.
'관악' 이라는 지명은 1963년 1월 1일 처음 등장한다. 경기도 시흥군 동면 일대가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되면서, 지금의 관악구와 동작구 일대를 ‘관악출장소'가 설치된다. 1973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관악구'로 정식 행정구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