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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재일조선인 민족운동의 분기점, 2 · 8독립선언 37 식민지시기 대표적인 항일투쟁이 자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세계 역사 에 영향을 미친 투쟁은 3·1운동이지 만, 3·1운동의 기폭제는 2·8 독립운 동이었다. 2·8 독립운동은 재일조선 인운동사 속에서 독자적인 내용을 갖 고 전개한 반일운동이었다. 2·8독립 운동 주체가 지향한 이념과 활동은  향후 재일조선인운동에 큰 영향을 미 쳤다. 첫번째 영향은 지속성, 두번째 는 재일조선인운동과의 연계성이다.  2·8독립운동을 주도한 단체의 1920 년대 합법투쟁은 1930년대 비합법 투쟁기에는 조선어 투쟁, 조선어 연 극 운동, 비밀결사의 방법으로 이어 져갔다. 이처럼 2·8독립운동을 주도 한 재일조선인운동단체는 1919년 2 월 8일에 멈추지 않고 일본 당국의  집요한 탄압 속에서도 합법과 비합법 운동을 가리지 않고 재일조선인운동 의 역사를 이어나갔다. 목숨으로 이어간 재일조선인 민족운동 재일사학자 박경식이 작성한 ‘재일조선인활동가 희생자’. 대부분 20 ∼30대 나이에 민족의 독립과 조선인의 생존권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 은 이들이다. 이들 외에도 민족운동에 헌신한 재일조선인은 적지 않다. 2024년 말 기준 일본지역 항일운동의 업적을 인정받은 독립유공자는 317명이다. 재일조선인운동의 특징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다양한 사상을 수용해 지속적으로 합법·비합법투쟁을 견지했다는 점이다. 유학생과 노동자들 은 같은 단체에서 또는 별도의 단체에서 연대하면서 운동의 성과를 높 였다. 서진문(1903∼1928, 유치장에서 고문으로 석방 다음 날 사망), 박 철규(1907∼1930, 고문으로 집행 정지 입원 후 사망), 권일선(1902 ∼1930. 고문 후유증으로 입원 중 사망), 정휘세(1906∼1931. 옥 사), 이상조(1905∼1932. 옥중 폭행으로 사망), 조욱진(?∼1931. 고문으로 출옥 후 사망), 강유홍(?∼1932. 폭력단이 학살), 정순옥 (1908∼1932. 폭력단이 학살), 윤기협(1909∼1932조직 내 피살), 임영파(1908∼1932?. 옥중에서 피살), 박진(?∼1932. 유치 중 폭행 으로 사망), 김치정(1907∼1933?. 고문 후유증으로 가보석 후 사 망), 오사록(?∼1933. 경찰관이 학살), 조영우(?∼1933. 관헌에 추 적 당해 익사), 문순곤(1914∼1933. 옥사), 정태술(1896∼1934?. 옥 사), 김문준(1894∼1936. 출옥 후 병사), 박세용(1905∼1937, 가출 옥 후 사망), 이운수(1899∼1938. 고문으로 사망), 김일성(1898∼ 1938. 옥사), 신산축(?∼1939. 옥사), 김석암(?∼1939. 옥사), 박화진 (?∼1941. 취조 중 고문으로 사망), 강갑덕(1914∼1944. 옥사), 풍 전실언(1907∼1944. 옥사), 김종원(?∼1944. 옥사), 조금동(1912∼ 1945. 옥사), 송몽규(1916∼1945. 옥사), 윤동주(1917∼1945. 옥 사), 우홍석(?∼1941?. 옥사), 이동보(1905∼?. 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