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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백두산 주변의 주요 독립운동과 유적지 37 필자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하 는 사진가이다. 중국의 조선족에 대 한 사진적 기록을 하다 보니 곳곳이  독립운동의 현장이었고 사진만이 아 닌 글과 사진이 함께해야만 생명력을  가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래서 독립운동사 공부의 필요성을 절 감하고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역사학 자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과 관련된  학습을 하면서 이들 지역을 답사하였 다. 이 과정에서 아는 것만 보이고 보 이는 것만 촬영할 수 있다는 평소의  신념을 절감했다. 느낌이 오는 대로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내가 느낀 소감을 글 로도 남겨 사진과 글이 어울린 몇 권 의 저서도 남겼다. 시간이 많이 지났 다. 아마도 현장의 모습이 그 때 그대 로 남아있지 않은 지역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 사진들도 시간적· 공간적·역사적 순간을 보여주는 소중 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두만강 건 너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인  북간도 지역과 압록강 건너 요녕성의  서간도 지역은 일찍이 한인들이 삶의  터전을 잡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역사 적 현장이었다. 두 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 모두를 소개하려면 이 책의  전 지면을 할애해도 모자랄 것이다.  이에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을 추려서 기록하였다.  근대교육과 독립운동 백두산 가는 길목에 있는 길림성(吉林省)의 연길(延吉)과 용정(龍井), 화룡(和龍) 등지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으로 독립운동의 기지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의 한인 독립운동 의 바탕은 근대식 학교 교육이 뿌리를 내린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1906년 이상설에 의해 용정에 설립된 서전서숙은 만주 한인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 회의에 광무황제의 특사로 서전서숙 교장 이상설이 떠 나고 이 정보를 알게 된 일제의 한국통감부 간도 임시파출소에서는 서 전서숙을 감시하며 탄압하였다. 서전서숙은 통감부의 압박으로 곤란해 질 것을 예견하고 1907년 9월 자진해서 문을 닫았다. 학교가 폐교되자 서전서숙의 교직원들은 일부 학생을 거느리고 훈춘 탑두구(塔頭溝) 부 근으로 옮겨가서 서전서숙을 회복하고 학생을 더 모집하여 1년간의 단 기속성 수업을 거쳐 3개 반 학생 74명을 졸업시키고 해산하였다. 일제 는 1908년에 서전서숙 자리에 조선총독부 관할의 식민지 교육기관인 간도 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서전서숙을 졸업한 김학연(金學淵)은 명동촌으로 돌아와 형인 규암 (圭巖) 김약연(金躍淵, 1868~1942)과 함께 신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 용정 시내 용정실험소학교 교정의 ‘서전서숙 유지’ 비석(20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