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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세 시위를 이끈 이병립, 박하균 등 전국에서 1,000여 명이 체포되었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일어난 6.10 만세 운동은 일제의 강압적인 수탈과 식민 교육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학생들은 3.1 독립 만세 운동처럼 거국적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 일 것으로 예상되는 순종의 인산일을 시위날로 잡았다. 6.10 만세 운동은 3.1 만세 운동 이후 침체되 어 있었던 항일 투쟁을 일깨웠으며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학생이 독립 투쟁의 중심에 선 항일 시위 만세 운동이었다. 단일화된 민족 운동을 위하여 | 민족유일당 운동과 신간회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함께 6.10 만세 운동 을 추진하며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이후 항일 투쟁에 대 하여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독립을 위하여 서로 협 력하기로 하였다. 이에 이념과 상관없이 단일화된 민족 운동을 추진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민족유일당 운동이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의 연합으로 이룬 정치·사회단체가 탄생하였으니 신간 회다. 안재홍, 신채호 등 34인이 참여하여 서울에서 성 립되었다. 신간회는 독립이 아닌 자치를 반대하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 기관 철폐와 차별 교육 금지, 한국어 당시 서울 태평로에 모인 수많은 시위 군중들. 6.10 만세 운동은 일제의 강압적인 수탈과 식민 교육에 반대하여 일어났다. 6.10 만세 운동을 방해하기 위하여 일제 경찰이 시위 군중 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신간회 창립을 알리는 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