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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북리 석불입상 및 석탑(麻北里 石佛立像 및 石塔)
석불입상은 현재 용화전이라는 전각 속에 봉안되어 있다. 전각 바로 좌측면에는 남아있는 부재를 모아 건립한 탑 1기가 있고, 그 앞에는 2열로 선정비들이 늘어서 있다. 탑재(塔材)는 파탑(破塔)이 되어 쓰러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세운 것으로 쌓아놓은 석재 중에 다른 석재가 포함된 것으로 생각된다. 앙련이 조각된 1층 옥개석 위에 얹혀져 있는 방형 석재는 대좌형 기단의 상대석으로 보이는데 이상대석의 뒷면에 치석(治石)된 옥신괴임의 폭이 1층 옥신의 폭보다 좁아 같은 석조물의 부재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용화전은 좌우 각 한 칸의 건물에 전면을 제외한 삼면은 자연석을 이용한 방화담이 설치되어 있고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이곳은 현의 치소가 있던 마을의 어구이며 터가 드센 곳이여서 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축귀장신의 일종이던 것을 후대 사람들이 이를 미륵으로 신앙하며 당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 미륵석상은 조형상 장승이나 묘지의 문인석을 방불케 하는 유물로서 보는 이의 견해에 따라서는 장승의 일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석상이 있는 터에 석탑재가 남아 있고 예부터 이곳을 용화전이라고 지칭해 온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비록 생긴 모양은 장승을 닮긴 했으나 미륵으로 섬겨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경기도문화재총람에는 이 석상의 조성시기를 조선시대 후기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좀 더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조선조 후기에 이런 불상을 조성한 예가 드문 반면 외사면 가창리 미륵상에서와 같이 크기나 치졸성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있고 높은 이마나 어깨까지 내려앉은 귀의 모양 등에서 유사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석인상, 장승 등 불상이 아닌 조각상을 미륵으로 예배 치성하는 경향은 임진왜란 이후 전국적으로 유행하였다. 불상은 직육면체의 몸통에 높은 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장방형으로 턱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널리 유행하는 마을 미륵신앙의 일종으로 민간에게 치병, 기자, 마을의 수호, 기복 등의 역할을 하며 신앙되었던 불상으로 여겨진다. 상의 전체 높이 211.5cm, 머리높이 71.5cm, 어깨폭 51cm, 최대측면 두께는 52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