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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24년 9월 Special Theme  한국광복군 창설 제84주년 특집 ‘한국광복군과 미국 OSS의 합동작전’ 었다. 미국은 1942년 3월 국방성 정보기관인 ‘전략정보 국(OSS)’을 창설하여 인도·버마 전구에서 광범위하 게 활동을 전개하였다. 광복군과 미군의 연합작전은 1944년 10월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이 중국전구 OSS의 비밀첩보 책임자에게 광복군 대원들을 훈련 해 한반도에서 전략정보를 수집하는 ‘광복군과 OSS 합작’을 제의한 데서 비롯되었다(「이범석의 광복군 과 OSS의 합동작전 제안(1급비밀)」,『대한민국임시 정부 자료집』 13, 2006, 238~239쪽). 이리하여 중 국전구 미군사령부는 대일첩보전에 중국 내 소수의 한인을 모집하여 직접 훈련하는 ‘독수리작전(Eagle Project)’ 계획을 수립하였다. 독수리작전은 중국 관 내(關內)의 광복군과 일본군 부대에서 탈출한 학도병 등을 선발대상으로 한 특수작전으로서 부대원들을 선발하여 3개월 동안 훈련하고 이들을 한반도 의 전 략지점에 침투시켜 적 후방공작을 수행하는 것이었 다(「한미합작에 관한 각서(2급비밀)」,『대한민국임시 정부 자료집』 13, 253~254쪽). 독수리작전은 1945년 4월 3일 임시정부 주석 김 구의 최종 승인을 거쳐 광복군과 OSS의 실질적인 합 작이 시행되었다. 제1기 첩보 훈련과정을 마친 광복 군 제2지대는 미군과 공동으로 국내에 침투하는 ‘국 내진입작전’을 추진하였다. 국내정진대는 한국 측에 서는 이범석 등 4명과 OSS 측에서는 버드(Willis H. Bird) 대령 등 18명을 포함하여 총 22명으로 구성되 었다. 국내정진대는 8월 18일 시안(西安)에서 미국 공군기로 출발하여 서울 여의도비행장에 도착하였 으나, 일본군에 의해 서울 시내 진입이 저지되어 8월 19일 중국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OSS가 10월 1일 해체됨에 따라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국내정진대 의 진입작전은 광복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에 직접 참여를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김구와 도노반(Donovan) 장군 회담(1945, 시안[西安]) 한국광복군 제2지대 및 미국 OSS 간부들(출처 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