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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23년 4월 Special Theme   한국독립운동과 국제도시 한국독립운동의 세계적 전개  블 라 디 보 스 크 는   구 한 말   이 후   1910년대에 걸쳐 한국 독립을 가 져올 근거지로서 위상을 가졌으 며, ‘원동의 서울’이라 불리기도 했 다. 또한 재러 한인사회와 국외 독 립운동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블 라디보스토크는 1922년 러시아  내전이 종결되기까지 반일·반제국 주의의 기치아래 뜨거운 한인 독 립운동의 역사가 펼쳐졌던 공간이 었다.   한국근대사에서 러시아는 두만강을 사이에 둔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나라였다. 동북아시아의 끝자락 러시아 연해주의 중심은 유럽풍의  이국적인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어로 “동 방을 지배하다”를 뜻하며, 해삼위(海參威)로 불렸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속해 있는 연해주는 예로부터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의 흥망성쇠 역사가  있는 한민족의 고토(故土)로서 한인들이 뿌리 깊은 역사적 연고 의식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강동(江東)’이라고 해서 ‘서강(西江)’ 북간도와 구별 하기도 했다. 한인들은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 시베리아 지역을 ‘원동(遠 東)’이라고 했다. 한인 사회의 형성과 블라디보스토크 1860년대 이래 생계를 위해 이주해 간 함경도 농민들과 영세 농민들 이 황무지를 개간하고 연해주 일대에 한인 마을들을 개척하였다. 블라 디보스토크에 한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73년 군항(軍港)이 건 설되면서부터였다. 1893년 블라디보스토크시는 한인 거주지로서 한인 촌 1구를 설정해 주었다. 이곳이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Koreskaya  slabodka), 즉 한인촌이라 불렸던 한인 최초의 마을 개척리였다. 개척 리는 을사늑약 이후 국치를 전후해 신채호, 장지연, 이강, 홍범도, 유인 석 등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운집한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는 계동학교 등의 한인학교와 『해 조신문』, 『대동공보』 등 한인 언론 기관이 위치해 있었다.  1911년 개척리에 콜레라가 창 궐하였다. 러시아 당국은 3월 29 일 위생실행위원회 결의를 거쳐  개척리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 라는 ‘한인촌 이전에 관한 고시’를  발표하였다. 개척리의 한인들은  신개척리로 옮겨갔다. 한인들은  이 신개척리(新開拓里)를 ‘새로운  블라디보스톡의 개척리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