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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1910년 전후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 방략과 임시정부 수립운동 35 한 국가”라고 하였다. 약 9개월여에 걸친 박용만의 무형국가론은 중앙 총회 결성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중앙총회 결성 선 포식에서 국민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①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해외 한인의 최 고기 관으로 인정하고 자치제도를 실시할 것 ② 각지에 있는 해외 동포는 대한인국민회의 지도 를 받을 의무가 있으며 대한인국민회는 일반 동포 에게 의무 이행을 장려할 책임을 갖을 것 ③ 금후에는 대한인국민회에 입회금이나 회비가 없을 것이고, 해외동포는 어느 곳에 있던지 그 지 방 경제형편에 의하여 지정되는 의무금을 대한인 국민회로 보낼 것이다 이후 국민회는 1914년 4월 미국정부로부터 재미 한인의 대표기관이자 한인 자치정부로 인정받아 활 동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일 본이 연합국의 일원이 되자, 러시아와 만주에 설립 된 지방총회가 해체되어 북미와 하와이 지방총회만 남게 되면서 전지구적 임시정부로 활동하려던 계획 은 중단되었다. 대한인국민회에서 추진하던 임시정부 건설론은 1917년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을 거쳐 1919 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되 었다.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미한인의 민족운동사와 근대 정치사상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 민족문제연구 소,  국가보훈처,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등을 거쳐 현재는 한국교원대 한국근대교육사연수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미 대륙의 항일무장투쟁론자   박용만』(역사공간, 2010), 『새로운 하나된 한국을 꿈꾼 유일한』(역사공간, 2020)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필자 김도훈 「대동단결의 선언」 표지와 본문, 대표자 명단 (국가유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