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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괴정 오상규의 한북흥학회 · 서북학회 활동과 애국계몽운동 35 국민국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취지에 의해 한북흥 학회와 서우학회가 연합하여 서북학 회가 설립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구체 적인 사업은 학교 설립, 각 사립학교 의 교육방침 지도, 일반 민중들의 학 교 설립 등 교육 참여 촉구, 민중 계몽 을 위한 잡지 발간, 연설을 통한 애국 심 고취, 청년 지도, 민족산업진흥운 동 등이었다. 서북학회는 한성(서울)에 총사무소 를 두었다. 오상규는 1908년 평의원 의장으로서 활동하였으며, 1909년 이 후에는 회장을 맡아 학회를 주도하였다. 서북학회 주도세력의 출신은 신지식층, 신시민층, 혁신적인 무관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당연히 서구의 신사상과 신학문을 적극 수용한 인사들이었다. 가장 먼저 한 사업이 서북협성학교 설립이었다. 교육과정은 사범속성과, 보통과, 측량과, 수상야학 교, 농촌강습소 등을 두었다. 학교 경비는 처음에는 평의원 이종호가 담당하였다. 이후 일반회원들의 후 원금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서북학회의 사상을 전파 확대하기 위해 서북지역 에 지회와 지교(支校)를 설립하였다. 지회 설치 지역 은 1909년 5월까지 총 31개였다. 지교는 서북협성 학교의 산하에 두었다. 31개 지역에 69개교의 지교 가 설립되었다. 서북학회에서 또한 주력한 것은 『서 북학회월보』 발간, 강연회 및 토론회 개최, 서북학생 친목회, 심학강연소 운영 등을 통한 청년지도활동, 민족산업진흥운동 등이었다. 『서북학회월보』는 서 서북학회에서 세운 서북협성학교 전경. 나중에 서북학회 회관으로 사용되었다. 『서북학회월보』 창간호(1908년 6월 1일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