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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간도, 백두산 인식과 독립운동 35 하겠다. (이 글은 강석화, 「 조선 후기 백두산에 대한 인식 의 변화 」 『조선시대사학보』 56, 2011 ; 박찬승, 「 백 두산의 ‘민족 영산’으로의 표상화 」 『동아시아문화연 구』 55, 2013 ; 윤병석, 『1910년대 국외항일운동Ⅰ -만주‧러시아』, 독립기념관, 2009 ; 은정태, 「 땅 문 제이자 사람 문제인 간도문제 」 『동아시아 영토분쟁 의 어제와 오늘』, 글로벌콘텐츠, 2014 ; 이명종, 「 근 대 한국인의 만주인식 연구」 한양대박사학위논문, 2014 등을 참고함) 한국근대사, 한중외교사(국제관계사)를 전공하며 근대 시기 간도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거쳐 현재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 소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역사디자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대한제국기 ‘간도문제’의 추이와 ‘식민화’」(2005), 『근대 변경의 형성과 변경민의 삶』(공저, 200 9),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어제와 오늘』(공저, 2014), 『제국과 변경』(공저, 2017), 『대한제국기 간도 자료집 : 정부문서』(번역, 2021·2022) 등의 논저가 있다. 필자 은정태 조선주차(駐箚) 헌병대사령부에서 작성한 「불령단관계잡건 재만주 6책, “재외조선인 경영 학교서당 일람표 송부(送付) 에 관한 건”」(1916.12.28). 북간도지역 소재 조선인 경영 학교 일람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