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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시인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가 1970년에 이사와 2000년에 사망할 때까지 30년간 살던 집이다.
서정주는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14세 때인 1929년에 서울로 올라와 중앙고등보통 학교에 입학했다. 같은해 광주학생 항일 운동에 참여했다가 이듬해에 퇴학당하고,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다가 당시 많은 문인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정호스님 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1935년에는 정호스님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불교전문학교 (동국대학교의 전신)에 입학 했으나 1년 후 자퇴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壁)」이 당선되면서 문단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1941년에는 「자화상(自畫像)」 등 24편의 시가 수록된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을 출간했다. 해방 후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했고, 1949년에 한국문인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195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다. 1941년에 동대문여학교 교사로 재직한 이후, 동아대학교, 조선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며 오랫동안 시인을 양성하기도 했다.
서정주는 60여 년의 창작 기간 동안 천여 편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초기 작품에서는 본능과 도덕과의 갈등, 또는 내면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충돌을 관능적인 이미지로 담아내었고, 40세 이후에는 유 불교의 사상과 한국의 신화·설화 세계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탁월한 상상력과 천부적인 언어적감각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현대 시문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와 신군부 치하에서의 친독재 행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1943년 『매일신보』에글을 게재하여 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으로 전쟁에 참여할 것을 독려 하였고, 1944년에는 일본 병사들의 죽음을 찬양하거나 카미카제 특공대를 추모하는 글을 짓는 등 일제에 대한 찬양과 황국신민화 정책을 선전하는데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이에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서정주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하였으며,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랐다. 또한 해방 후에는 이승만을 기리는 전기를 집필하거나, 전두환을 칭송하는 시를 쓰는 등 독재정권에 적극적으로 결탁하여 비난능 받기도 했다. 이곳 서정주의 집은 그가 많은 작품을 창작했던 산실이며, 생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서정주 사후 방치되던 것을 2003년 서울시가 매입하였고, 2009년부터 개보수를 시작하여 1층,지상2층의 옛 주택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으며, 2011년에 서정주의 집으로 일반에게 공개했다. 1층에는 서정주의 옷, 모자, 가방, 지팡이가 전시 되어 있고, 2층에는 서정주가 시를 짓던 창작실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서정주의 육성과 모습이 담긴 영상물과 사진 등도 전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