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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며, 지고(至高)한 인도주의 정신(人道主義 精神)이라 아니할 수 없다할 것입니다. 오늘날 영월을「충절의 고장」으로 일컫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 희생 은 당대뿐만 아니라 그 후 무려 2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그 후손들에게까지 화가 미치고 또한 엄 문의 선산까지 잃게 되었으니 참으로 크나 큰 희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나 국가 임금에 대한 충절에는 패전이나 실패하면 큰 화를 입지만 승리나 성공하면 큰 공 이 돌아오는 것인데 엄호장의 충절이야말로 돌아가신 분에 대한 것이므로 아무런 바람이 없는 것이 기 에 더욱 만고에 빛나는 의행(毅궋)이라 역대 대신 및 정승, 대왕들이 모두 칭송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후일 숙종(肅宗)은 공의 의행(毅궋)이“해와 달과 같이 밝고 태산(泰山)과 같이 높다 ” 고 하였고, 영조(英祖)는“흥도 이전에 흥도 같은 사람 없었고, 흥도 이후에도 흥도 있으랴”라고 하 였으며, 정조(正祖)는“엄호장이 무엇을 바라고 그 엄청난 일을 하였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또한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곥)과 영의정 김병학(金炳學) 등 정승, 대신들은 한결 같이“ 엄 흥도의 충절은 만고에 우뚝 솟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1833년 공 에 게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추증(追贈)하고, 1876년에는「충의(忠毅)」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던 것 입니다. 호장의 신분으로 세상에 알려질세라 숨어서 행한 일이고, 그것도 오랜 세월 후에나 인정받게 된 행 적(궋蹟)이지만 이는 참으로“진흙 속에 묻힌 진주(眞珠)”같은 의행(毅궋)이라 아니할 수 있겠습 니 까? 지난날 우리는 엄호장이 충절을 바쳤던 단종을 모신 장릉(莊겓)을 바라보는 이곳에 공의 기념관 을 세워 인간 최고의 정신적 미덕을 발휘하고 자기를 버리는 그 거룩한 행적을 모든 이들에게 알려 기 리 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더욱 건전하고 한 차원 수준 높게 발전하기를 기원하였던 것 입 니다. 우리민족을 지켜 오신 억조창생 천지신명 신령님들이시어! 이제 충의공엄흥도충신기념관은 안타깝게도 불타 사라졌지만 충의공의 더 큰 뜻을 세워 복원하고 충의공 엄흥도 충신의 거룩한 정신을 담은 기념공원으로 후대에 길이 남도록 거룩한 장소로 잘 보존 발전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더욱 신령스러운 일은 불타버린 이곳 충의공엄흥도충신기념관 잿더미 위에 멸종 위기 종인 2m가 넘는 대물 황구렁이가 나타나 그 동안 충의공 엄흥도 충신의 기념관을 지키면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애석하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고 강원도민일보에서 황구렁이 사진과 함께 보도하였습니다. 대물 황구렁이가 나타나 내보이는 것은 이 자리를 더욱 훌륭히 복원해 만고의 충의공 엄흥도충신 기념공원으로 발전시켜“위선피화 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즉, 옳은 일을 위해서는 비록 화를 충의공엄흥도충신기념관 복원과 충의공기념공원 조성을 위한 고유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