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page

34 2023년 2월 Special Theme  「조선혁명선언」 100년! 새로운 사회 건설을 꿈꾸다 진화사관에서 혁명사관으로 변화 신채호의 역사관은 「조선혁명선언」을 계기로 크게  변화하였다. 1910년대까지는 한민족의 역사에서 외 국과의 경쟁에서 자주적 태도를 보이거나 승리한 을 지문덕, 최영, 이순신 등을 강조하는 영웅주의적 역 사관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에는 지배 자와 승리자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반역자나 혁명적  반항아와 같은 약자와 패배자 중심의 역사관으로 바 뀌었다. 역사 속의 승리자는 ‘이해타산에 밝은 소인 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고, 패배한 반역자는 ‘하늘과  다투며 사람과 싸워 자기의 성격을 발휘하여, 인간에 게 교훈을 준’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적극적으로 평 가되었다. 결국 신채호는 역사 속에서 승리와 패배,  옳고 그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이나 민족 이든 자신의 성격을 찾기 위한 ‘투쟁’ 그 자체를 중시 하게 되었다. 그는 『조선상고사』 총론에서 역사를 아 (我)와 비아(非我) 사이의 연속적 투쟁 과정으로 정의 하였다. 역사는 어떤 존재이든 자신의 성격 즉 정체 성을 확립해 가는 투쟁적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신채호는 구한말 유학자들의 중화주의적 역사관 과 개화론자들의 사대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자 주적이고 주체적인 민족사관의 수립을 주장하였다.  실제 역사 서술 작업에 있어서는 민족사적 영웅에 대 한 전기를 저술하면서 영웅주의 역사관을 나타냈다.  그러나 1910년대 국망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국 가와 정부가 없는 국민으로 생활하면서 제국주의든  아니든 국가와 정부의 폭력성을 체감하였다. 그리고  3 · 1운동에서 민중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이에 그 는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에 속박된 무국적의 무산  민중이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한국의 역사 속에서 확인하고자 하였다.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을 인류가 인류를 압박 하지 않으며 사회가 사회를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하자는 말로 끝맺었다. 다른 민 족과 국가와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자주적으로 독립 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보편적 인류 와 사회가 서로를 압박하거나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 는 이상주의적인 조선을 건설하자고 하였다. 조선이 라는 국가나 정부의 건설보다 모든 인류와 사회가 공 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이상적 조선의 건설을 지향 하였다. 이후 그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인류적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신채 호는 피압박민족과 약소민족의 인사들로 구성된 무 정부주의 국제적 연대 조직에 참여하여 무정부적 이 상사회 건설을 실천하였다. 요컨대,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에서 제시한 민 중직접혁명론은 이전까지 자신을 포함한 민족주의 자들이 견지했던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독립운동방 법론을 벗어나 1920년대 이후 그가 무정부주의 운동 에 참여하고 혁명적 역사관을 수립하는 출발점이 되 었다.  필자 김기승 고려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순천향대학교 국제문화학 과 교수, 인문대학장, 아산학연구소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등 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한국근현대 사회사 상사연구』(신서원, 1994),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론가 조소앙』(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2015), 『유림 독립운동의 상징 심산 김창숙』(지식산업사, 2017) 등이, 논 문으로 「신채호의 독립운동과 역사인식의 변화」(2010)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