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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
독립운동 유공자 학교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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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金永萬)은 1934년 6월부터 경주군 감포리에서 배용득(裵龍得), 김성도(金成道) 등과 일본의 현대 자본주의제도와 사회개혁을 앞세우고 행해지는 일본인의 조선민족에 대한 착취 등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토론회를 1주일에 1회씩 여는 등 조선의 독립과 사유재산제도의 부인을 목적으로 하는 토론회를 개최하여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노력하였다.
그해 9월 초 경주에서 개최된 신라제(新羅祭)에서 의외의 단서가 발각되면서 이른바 '경주적색농민조합사건' 관련자 80여 명과 함께 경주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김영만은 1936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제1심 판결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180일 통산)을 받았다. 즉시 대구복심법원에 대구지방법원의 징역 유죄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여 그해 1936년 10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미결구류 357일 통산)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36년 11월 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부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