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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간도, 백두산 인식과 독립운동 33 어천절을 중요한 국경일로 기념하였고, 『동아일보』 창간 직후 ‘단군영정 현상모집’은 이런 흐름을 잘 보 여주는 일이었다. 1910년대 독립군 기지가 된 북간도와 서간도 1910년을 전후로 만주와 연해주에 독립운동 기지 를 설치, 경영하여 독립전쟁을 펼치려는 많은 노력 이 있었다. 이상설·이동녕·안창호·신채호 등이 중국 으로 집단이주 계획을 세웠고, 무관학교 설치와 독 립군 양성을 실행하였다. 북간도는 두만강을 건넌 한인들이 일찍부터 이주 해 있는 가운데 이상설, 여준 김약연 등 많은 국내외 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민족주의 교육운동에 나서 서전서숙, 명동학교, 창동학교 등을 설립, 운영하였 다. 1910년대에 이르러 북간도에는 항일과 자치를 목표로 간민교육회가 조직되어 한인사회의 경제적 기반 확대, 위생시설 확보, 문맹퇴치운동 조직,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생산‧판매조합 결성, 한인 주 민들에게 지세, 교육회비 등을 징수하여 활동자금으 로 사용 등의 자치활동을 하였다. 기관지 간행, 교원 양성소와 사범학교 등 각종학교도 설립 운영하였고, 특히 무관학교까지 건립하여 독립군 양성을 추진하 였다. 주도 인물은 이동춘, 구춘선 등이었다. 얼마 안가 간민교육회는 간민회로 개편하고 정부조직의 형태 를 갖추어 북간도 거주 한인들을 대표하는 자치기관 으로 성장하였다. 북간도 지역에 1909년 ‘간도협약’ 이후 용정(龍井)에 일본 총영사관이 설치되어 감시망 이 상주하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3·1운동(용정 3·13 운동)과 이후 강인한 무장독립투쟁(청산리·봉오동전 투)을 전개해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1860년대 이 래 형성된 한인사회, 중국 관헌에 맞선 오랜 자치활 동의 힘이 밑바탕에 있었다. 한편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三源堡) 추가가(鄒家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청호촌 건너편 언덕에 있는 대종교 3종사의 묘와 묘비(독립기념관  제공)  민족사학자 박은식이 저술한 『발해태조 건국지』. 이 책은 서간도 지역의 민족학 교인 흥동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한 것이 다(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