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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여성의병장 윤희순과 유제원의 가족독립운동 33 해 듣고 국가위기상황을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윤 희순은 ‘조선선비의 안해 윤희순’으로 자신을 밝힌 격문을 일본 대장에게 보냈는데, 그 시대 여성으로는 파격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오랑캐들아 경고한 다’, ‘왜놈대장보거라’, ‘의병군가’, ‘안사람의병가’ 등 을미의병과 정미의병, 국외 만주에서 윤희순이 저작 한 의병가사와 기록은 16편에 달한다. 유제원 · 윤희순 일가 독립운동의 흔적들 한국독립운동을 실천한 독립운동가를 살펴보면, 부부독립운동가를 넘어 가족독립운동가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독립운동가 윤희순도 일가 전체가 독립 운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실 천했다. 윤희순은 1875년 16세에 강원도 춘천시 남면 발 산리의 유제원과 혼인했다. 항재(恒齋) 유제원은 성 재(省齋) 유중교 선생의 문하생으로 위정척사사상과 민족정신이 투철했던 인물이다. 시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을 비롯하여 일가 전체가 독립운동에 투신 했 다. 강원도 춘천 · 원주 · 제천 · 영월 · 단양 · 청풍 · 충주 · 청 주 등에 의병으로 출정하여 친일관료를 처단하는 등 항일투쟁에 적극 참가하였다. 하지만 1910년 8월 22 일 일제가 한일합방문서(韓日合邦文書)에 조인을 감 행하여 8월 29일 국권이 피탈되자 일가친척을 비롯 한 의병가족은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고흥유씨 대 소가족과 문인 · 사우 · 친지 등 40~50가구는 만주(중 국 동북지방)를 향했다. 남만주 흥경현(興京縣) 평정 산진(平頂山鎭) 난천자(暖泉子) 마을 인근에서 산지를 개간하여 고려구(高廲 溝)마을을 개척했다. 의병정신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경을 넘어 독 립정신으로 피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의병가족 들. 마을을 오갔던 난천자 다리와 얼지 않는 따뜻한 물이 사시사철 나왔던 난천자(暖泉子), 평정산 자락 에 마련된 고려구 마을 터는 2019년 필자가 방문했 을 때 남아 있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주춧돌과 대형 맷돌의 흔적에서 독립운동 가족의 활동지였다는 것 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희순 · 유제원 부부가 의병가 족과 함께 산지를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고 감자와 옥 윤희순 일가의 이동로 및 독립운동 활동지 윤희순 · 유제원 가족부대 활동 야산에서 바라본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