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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일제 말기 일본 상황과 재일조선인 사회 33 조선부락은 삶의 터전이었다. 차 별받으며 지친 동포들이 저녁에 모 여 회포를 풀고, 서로 직장을 마련 해주고 도우며 사는 곳이었다. 이곳 에서는 당시 엄격히 금지되었던 우 리말을 사용하고 있었고, 비밀리에 우리말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일본 의 총동원체제기에는 탈출과 작업 태만, 작업 거부 등의 방법과 정보 를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또한 조선부락은 조선에서 머나 먼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들 의 피난처이자 지원세력이었다. 조 선부락이 있기에 지명이 낯설고 언 어가 서툰 조선인들은 탈출할 용기 를 냈고, 탈출 후 몸을 숨길 수 있었 다. 그러므로 당국은 조선부락을 해 체하려 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들 의 저항으로 조선부락 해체는 연합 군이 일본 본토 공습을 할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탄압에 저항과 투쟁으로 맞서다 일제가 제국 일본의 모든 인력과 물자, 자금을 동원해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치를 때, 재일조선인은 순응과 굴종의 길만을 택하지 않았다. 소극적 저항인 작업장 탈출을 하거나 적극적 투쟁인 파업과 태업을 벌이고, 비밀결사도 불 사했다. 1942년 9월 21일 해군은 해군 진수부(鎭守府) 소 속 직할 사업장에 보낼 토목건축 노동 인력을 동원 하 기 위해 징용 명령을 발동했다. 그러나 성과는 목표 미달이었다. 일제는 총 17,188명에게 출두 명령을 내 렸으나 9,818명이 출두했고, 이 가운데 4,293명이 징 용장을 받아갔다. 그렇다고 징용장을 받은 이들이 모 오사카항의 조선인들 1936년 오사카시 이카이노(猪飼野) 상점가 모습(재일한인역사자료관,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도록 - 사진으로 보는 재일코리안 100년』, 39쪽)